일하는 시간
새벽에 정전이 되었다.
약속된 정전이였다.
그동안 일하던 센트럴씨티의
정전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었기에
정시에 불이 나가버리자 어리둥절 하기까지 했었다.
새벽 2시부터 4시 40분까지 하던일을 마치고 어둠속에서
비상등 불빛 아래서 휴무때 집에 가져가지 못해서 마무리 못했던
참 괜찮은 죽음을 서둘러 읽어내려갔다.
그중 책 제목과 같은 단락중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
정오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지루한 학회를 듣고 있을 때 누이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몇 분 전에 돌아셨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호흡이 점점 얕아지다가 주위에 모여 있던
가족들이 마침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깨달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몸과 뇌는 더 이상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한 껍데기가 됐다.
나는 종종 침대 곁에 앉아 어머니의 뇌를 만드는
수백만 개의 신경세포와 무한한 연결들, 그리고
어머니의 자아가 어떻게 몸부림치며 꺼져가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곤 했다.
나는 그 마지막 새벽, 일하러 가기 바로 전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얼굴은 푹 꺼지고 야위었고 어떤 작은 움직임이나 말도 없으며
눈도 감고 계셨지만, 물을 드시겠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정확하게 알아듣고 고개를 저으셨다.
암세포의 침공을 받아 무너져가는 몸 안에는 "어머니의 자아"가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모든 뇌세포는 죽었다.
그리고 어머니-어떤 의미에 서는 뉴런 수백만 개의 복잡한
전기화학적 상호작용이었던-도
더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신경과학에서는 이를 두고 결합문제 라고 부른다.
무생물에 지나지 않는 껍데기가 의식과 느낌을 알 수 있다는
신비롭고 굉장한 사실 말이다. 나도 그것을 느꼈다.
어머니가 아무리 죽어가고 있어도 그 몸뚱이 속에는 아직도
"진짜 어머니" 가 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중략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아침 퇴근길에
하나와 미소시루 영화를 엄마를 불러서 함께 보았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화로 새벽에 읽었던
책과 아주 잘 연결되었고 덕분에 엄마손을 더 따듯하게 잡아 드리는 시간이 되었다.
** 오늘도 정전이여서 팝게에서는 비교적 긴 글이라
복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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