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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의 황금 들녘을 달리다

한국의산천 | 10-10 19:43 | 조회수 : 823 | 추천 : 2

충남 당진....내포지방의 황금 들녘을 달렸습니다
저는 자전거타기를 즐겨하면서 사진은 그냥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촬영합니다
제 사진에 작품성은 없지만 혹시 이쪽에 가시면 아름다운 풍경도 있다고 알려드립니다
이곳 합덕제(저수지)는 규모가 엄청크고 연꽃이 넓게 피더군요

DMC-G7 | Landscape Mode | 14.00mm | ISO-200 | F6.3 | 1/320s | 0.00 EV | Multi-Segment | Auto WB | 2016-09-28 11:41:49


  신평 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진행하는 근대문화유산 복원 프로젝트 ‘찾아가는 양조장’에 최초로 선정된 곳으로 3대째 가업을 이어 술을 빚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백련 막걸리는 청와대 공식 만찬주, 삼성 이건희 회장의 건배 제의주 등으로 유명한곳입니다.

이곳 양조 문화원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술을 빚어 마셨던 우리의 전통문화가 일제 강점기에 말살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양조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양조장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성장해왔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며 지켜온 꼿꼿한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DMC-G7 | Landscape Mode | 14.00mm | ISO-200 | F5.6 | 1/250s | 0.00 EV | Multi-Segment | Auto WB | 2016-09-28 11:42:00

DMC-G7 | Program Normal | 19.00mm | ISO-200 | F7.1 | 1/400s | 0.00 EV | Multi-Segment | Auto WB | 2016-09-28 13:35:07

▲ 126년의 역사를 지닌 합덕성당. 이건물은 1929년 지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 2016 한국의산천
1890년 아산시 공세리성당과 함께 이 땅에 첫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세워진 양촌성당으로 출발하여, 189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명칭도 합덕성당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신축된 것인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양식으로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로 지었으며,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1년 합덕읍 운산리에 신합덕성당이 생김으로써 구합덕성당으로 불리다가, 1997년 다시 합덕성당의 명칭을 되찾았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준공된 것으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에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설계를  담당한 페랭(Perrin) 신부는 6 25때 납치되고, 현재 성당 구내에 있는 그의 묘소에는 유해가 없이 유물만 묻혀 있다.

내포지역에 박해가 끝난 1890년, 입구 계단을 오르면 자그마한 언덕에 붉은색 벽돌 건물이 두 개의 첨탑을 이고 있는 고딕풍의 성당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의 산 증인인 합덕성당은 7대 사제인 프랑스 선교사 페랭 신부가 30년간 주임 신부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홀로 성당에 남아있다 북한군에 의해 납치, 피살됐다.
성당 옆에는 페랭 신부의 묘소가 유해도 없이 유물만 묻힌 채 홀연히 자리하고 있다.

  아시아 주교들을 만나고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해미성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가 순교자들의 성지다. 무명 순교자들의 땅이다. 이름 없이 자신의 믿음을 위해 순교한 수많은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DMC-G7 | Landscape Mode | 14.00mm | ISO-200 | F6.3 | 1/320s | 0.00 EV | Multi-Segment | Auto WB | 2016-09-28 13:40:08

충청도는 전라도와 경기도 사이에 있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첫글자 한자씩 따왔다고 한다. 서쪽은 바다에 닿았고 동쪽의 동북편 모퉁이가 되는 충주,제천,단양 등은 강원도 남쪽에 불쑥 들어가 있으며 그 아랫녘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경상도의 접경지역이다. 금북정맥과 금남정맥에 위치하여 전라도와 가깝고, 일부분은 금북정맥 북쪽에 있기 때문에 경기도와 가깝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다" 라고 했다.

'가야산 앞뒤에 있는 예산, 당진,서산,홍성 등 열 현을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구석에 막히어 끊기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병자년 두 차례의 난리에도 여기에는 적군이 들어오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생선과 소금이 넉넉해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고 적고 있다.

그 옛날 서해가 내륙 깊숙히까지 만이 들어와 있기에 내포라고 부르며 해운교통이 발달했고, 땅이 넓고 기름져 곡식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비산비야 내포지방은 딱히 눈길을 끌 만한 빼어난 절경은 없어도 부드러운 구릉과 들판, 풍요로운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그 순박한 말씨처럼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충청도 중의 충청도’로 꼽히면서, 오래 전부터 살기도 좋고 인심도 좋은 곳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허나 이중환의 지적대로 만(灣)에 길이 끊겨 육로로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00년 총길이 7,310m의 서해대교가 개통되자 모두 옛말이 되고 말았다. 내포지방도 그렇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DMC-G7 | Program Normal | 30.00mm | ISO-200 | F9.0 | 1/500s | 0.00 EV | Multi-Segment | Auto WB | 2016-09-28 13:40:39

DMC-G7 | Landscape Mode | 26.00mm | ISO-200 | F8.0 | 1/320s | 0.00 EV | Multi-Segment | Auto WB | 2016-09-28 15:08:52


상업성과는 무관한 제 개인 블로그입니다 참고하세요 >>> blog.daum.net/koreasan/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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