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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걸 왜 걱정해? 살아있는 동안엔 죽지 않을텐데

husky | 03-18 22:46 | 조회수 : 1,194 | 추천 : 1

입력 : 2017.03.11 03:02

[한대수의 사는 게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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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타 주에 살고 혼자 남은 할머니는 매일같이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맨해튼의 성 빈센트교회에서.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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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 생일이다. 69세. "해피 버스데이 투 미" 하고 노래를 부른다. 기적이다. 어떻게 이 오랜 세월을 겪어 냈는가. 청년기의 모험, 중년기의 이혼, 그리고 수많은 사고와 좌절. 그 사이에 음악 한다고 온갖 노력과 희생. 태평양을 30번 이상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살아남았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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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TV를 보면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틀기만 하면 "당신은 밤중에 소변을 세 번씩 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약을 복용하세요.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 "당신의 심장은 부정맥 아닙니까? 수술하지 마시고 ××약을 드십시오." 변호사 광고는 왜 그리 많은가. "관절 수술을 했는데 부작용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변호팀이 소송을 걸어 100만달러까지 받아낼 수 있으니, 당장 지금 연락하세요." 이런 광고들이 노인들을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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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부머(Baby Boomer·BB)'인 우리 세대는 미국 내 인구가 무려 760만명이나 된다. 2차 대전 이후(1946~1964) 가장 부유하고 희망이 있을 때 한 가정당 평균 5명씩 낳았다. BB세대가 미국 개인 자산의 80%를 소유하고 60%의 소비를 하며, 처방약의 77%를 복용한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러니 계속 약 광고, 의료보험 광고, 요양원 광고가 TV 프라임 타임에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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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맞으며 곰곰이 생각하니 범사에 감사하다. 내가 사랑하는 록스타들이 많이 요절했다. 작년만 해도 프린스, 데이비드 보위, 조지 마이클, 레너드 코헨이 죽었다. 주위 친구들도 암에 걸렸거나 다리가 고장 나 절뚝거리며 걸어 다닌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 재미없는 것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이제 항상 "너 이런 약 먹어봤어? 소화 잘된다"라든가 "나 어제 건강검진 했는데 아무 이상 없대" 같은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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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데는 인종차별도 없고 빈부격차도 없다.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기능이 하나씩 사라지는 과정이다. 그런 뒤에 천당의 대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나는 우리 문화가 지나치게 육체적인 건강을 강요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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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간다는 것은 친구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이용 가치가 없으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늙어서 가장 큰 보약은 친구 한두 명이다. 앉아서 옛 추억을 되새기고 젊었을 때 실수담을 하며 한바탕 웃고 옛날 여자 친구를 생각하며 "와! 그 여자 몸매 죽여줬는데" 하고 떠들어댈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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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년기에 뉴욕 최고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했던 40년 지기들과 모여 잡담을 했다. "야, 자니. 너 묘비명이 뭐야?" 하니 "괜히 왔다 가네(What was that all about)"라고 했다. 한바탕 웃었다. "헤이, 리치. 너는?" "누가 방귀 뀌었어(Who farted)?" 또 한바탕 웃었다. 나는 "걱정하다가 한평생 지나갔네(I worried to death)" 하니 두 친구가 "야! 너 아직도 걱정하고 있잖아" 하기에 다  같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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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뉴욕타임스 부고란에서 읽은 레이먼드 스멀리언 뉴욕시립대 교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는 97세까지 즐겁게 살다 죽은 수학과 철학 교수였다. "죽는 걸 왜 걱정해? 살아있는 동안엔 죽지 않을 텐데(Why should I worry about dying? It's not going to happen in my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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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음악가 겸 사진가 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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