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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내 얼굴을 위하여 - 아에게 (AEG HR 5626) 전기면도기

하록선장 | 01-17 02:40 | 조회수 : 1,477 | 추천 : 1

네이버는 물론 유튜브에도 그 흔한 리뷰 하나 없는 전기면도기.

그런 듣보잡 제품을 제가 큰 맘 먹고 샀습니다.

저는 관대하니까요. ㅎㅎㅎ

아에게(AEG) 제품을 써본 적이 있다면, 여러분도 역시 마이너기질이 다분할 것입니다.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장고, 오븐 같은 대형제품부터 진공청소기, 토스트기, 믹서기 같은 소형제품까지...

아마도 유럽사람들에겐 중급의 가전제품회사로 인식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작업하는 사람들이 아에게(AEG) 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주방제품보다는 작업공구를 더 빨리 떠올릴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산 전동드릴과 그라인더가 아에게(AEG) 제품이었거든요.

남들은 보쉬(Bosch) 를 샀지만, 전 웬지 아에게(AEG) 가 좋았습니다.

뭔가, 영원히 모터를 돌릴 것 같은 투박한 디자인.

아쉽게도 이 공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다 없어졌어요.

미대가 다 그렇겠지만, 왜들 그리 남의 물건을 탐하는 건지요. ㅎㅎㅎ

암튼, 시간이 훌쩍 흘러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상상도 하지 못한 그 먼 미래가 닥쳐왔고, 또 다시 해피벌스데이투유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각시가 무얼 선물로 받고싶냐고 물었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긴 하더군요.

솔직히 새해가 밝은 직후부터, 저는 이베이를 뻔질나게 들락거렸습니다.

뭐, 살 여력은 없더라도, 둘러보는 거야 공짜 아닌가요.

그 때 제가 본 게 바로 전기면도기였습니다.

잠깐 지금의 제 상황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2유로 조금 넘는 Balea 표 수동면도기를 꽤 오랫동안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 녀석은, 자기가 싸구려제품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너무나도 완벽하게 내 수염들을 깎아주고 있습니다.

한번 면도를 하면 그렇게 매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남자들은 이 맛에 얼굴에 칼을 대지요. ㅎㅎㅎ

하지만 뭔가 불편한 점도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자주 칼날을 바꿔줘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칼날도 엄청 싸요. 3중날 다섯개들이 세트가 겨우 3유로니까요.

(사랑해요 DM)

www.dm.de/balea-men-rasiere...

갑자기 각시의 질문을 받게 된 저는, 하루만 고민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잠자기 전에 이렇게 말했지요.

"전기면도기가 하나 갖고 싶은데..."

"그래, 기왕 살 바에 좋은 걸로 알아보자."

"아니야, 싼 거 살거야!"

일단 생일선물은 확보했으니, 한번 더 찬찬히 리뷰를 훑어봅니다.

오, 이건 3 헤드인데 방수도 된다! 와, 저건 일자형인데 헤드가 2축으로 움직이네!

세상엔 좋은 제품들이 참 많군요. 다만 비쌀 뿐...

마음속의 최고한도액은 40유로였지만, 별 일 없으면 30유로가 안넘길 바랐습니다.

일단 모두가 추천하는 브랜드부터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네. 필립스, 브라운, 그리고 파나소닉입니다.

물론 샤오미나 티피오스도 들어봤지만, 독일이베이에선 거의 찾기가 어렵거든요.

디자인만 보면 필립스가 단연 돋보이더라구요. 유려한 3 헤드와 잘빠진 바디.

하지만 제 수염은 굵은 직모라서 면도시간이 오래 걸린답니다.

게다가 헤드 교체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네요!

세 회사 중에서 아마도 가장 비싸지 않을까 싶습니다.

AT570 같은 저가형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수염이 안깎여서 남몰래 맘상할까 봐, 필립스에 대한 미련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전 날면도를 하면서도 한번도 피부트러블이 없었어요.

필립스의 최고장점 하나가 필요없어지는 순간이죠.

브라운은 우리 아버지도 정말 오래 쓰셨고, 저도 대학생 때 아버지 면도기를 몇 번 써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브라운 제품을 사라고 하시는군요.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필립스 3 헤드로 가볼까 하신다네요. ㅎㅎㅎ

(언젠가 꼭 사드려야지. 정성껏 키워주신 분께 이 마음을 담아.)

그런데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최고한도액을 40유로로 정했더니 브라운 시리즈 1 밖에 살 수가 없더라구요.

한국에선 시리즈 3 을 엄청 싸게 판다는데, 여긴 일단 50유로부터 시작합니다.

"파나소닉 하면 절삭력"이라는 칭찬은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네이버 리뷰의 대부분이 절삭력에 대한 칭찬이었으니까요.

브라운보다 싸고 더 잘 깎인다니, 이건 거의 확정각인데 말이지요.슬

쩍 살펴보니 한국사람들은 거의 안쓰는 es-sl33 이 30유로에 올라와 있군요.

그래서 이걸로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주 작은 파문이 내 마음 속에 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파나소닉보다 아에게(AEG)를 좋아하고 있다는 내면의 소리.

쌔끈한 대기업의 면도기 디자인보다 아에게(AEG) 의 투박한 디자인이 더 맘에 든다는 내면의 소리.

나의 첫번째 공구를 자꾸만 떠올리게 하는 그 유치한 색상이 딱 내 스타일이라는 내면의 소리.

닥치고 그냥 아에게(AEG) 사라는 내면의 소리.

그리고 오늘 저는 이 놈과 조우하였습니다.

박스가 놀랍도록 유치하고 조악하게 생겼더라구요.

가격은 20유로인데, 박스만 보면 10유로쯤 되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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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머가 있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트리머를 욕합니다.

잘 안 깎이나봅니다. 전 상관없어요. 어차피 구레나룻만 살짝 정리할거니까요.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훨씬 좋으니까, 괜찮습니다 ㅎㅎㅎ

아에게(AEG) HR 5256 은 헤드를 물청소할 수 있는 IPX 5 등급의 제품입니다.

헤드부분을 열어보니, 날망과 날은 아주 일반적으로 생겼습니다.

각 파트들의 마감상태도 딱 20유로 정도의 수준이구요.

뭐, 면도를 바디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날망과 날만 잘 작동하면 그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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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가 직접 선택한 첫번째 전기면도기인데, 기념사진이나 남겨볼까요?

남들이 보기엔 주황색과 검은색이 무척 촌스러워 보이겠지만, 제 눈엔 참 정겹기만 합니다.

저의 옛날 전동공구가 자꾸만 생각나서요.

아마도 아에게(AEG),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을지두요.

"전기면도기에게 당신의 얼굴은 Material 입니다. 스위치 온! 부앙~~!"

충전선은 일자선이 아니라 탄력있는 스프링형태의 선입니다.

웬지 더 단단해보이고, 막 당겨보고 싶습니다.

충전을 하는 중에는 아래부분이 전체적으로 붉게 빛나더군요.

충전램프는 중앙에 조그맣게 붙어있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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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내 얼굴을 위하여!" 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제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쳐봅니다. "아직은 못생겼지만 이제 곧 엄청 잘생겨질 내 얼굴을 위하여!"

박스를 열고 사진 몇 방 찍고 바로 면도를 해봤습니다.

날면도기를 기준으로 볼 때, 절삭력은 10점 만점에 8점.

면도를 하고 애프터세이빙 스킨을 발랐는데, 날면도기보다 살짝 덜 따갑습니다.

이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워요.

20유로의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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