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 작가의 원작 “D.P 개의날”은 못봤습니다만
드라마 D.P의 여섯편은 하루에 다 봤습니다.
보는 내내 여러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여
명확히 구별할 수 없던
불행했던 때였습니다.
#1(하나) 어쩌다 훈련병
1997년 12월 29일, 저는 아주 운이 좋게 IMF가 터지자마자 입대를 했습니다.
논산에 가면 다들 편하게 풀린다는데, 전 거기서 4.2인치 박격포 주특기를 받았네요.
그렇게 전반기 후반기의 긴 논산생활이 끝나고 306보충대로 갔습니다.
화장실 한쪽에 "꿈의 17사 환상의 30사"라고 적혀있더군요.
저는 운좋게도 그 환상의 30사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또 훈련병이라며 유격복을 던져 줍니다.
하라니 하긴 하는데, 아침구보를 할 때마다 묘한 광경을 봅니다.
기괴하게 신음(?)소리를 내며 뛰어댕기는 미친 집단이 보이더라구요.
얘네들은 간혹 오후에도 전투복을 차려입고 군장을 메고 또 뛰어댕깁니다.
마지막 날 밤 고참조교가 와서, 저기 가고싶은 사람 있으면 손들랍니다.
가슴 한 켠에 예쁜 그림이 붙어있길래 제가 슬쩍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제 논산 25연대 6중대 동기 김X진도요.
훈련소생활이 끝나자 간부 한 명이 우리 둘을 데리고 어디론가 걸어갑니다.
한 5분 걸었을까, 강자존(强者存)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조그만 위병소를 통과합니다.
도착한 연병장엔 못생긴 독수리가 떡하니 그려진 사열대가 있었습니다.
여기가 바로 기갑수색대대라고 합니다. (정찰대가 아니라니!)
저는 전투3중대의 지원소대에 배치받아가지구요,
그렇게 어리버리 군생활이 시작됩니다.
#2(둘) 어리버리 이등병
처음엔 좋은대학 미대생이라고 다들 잘해줬습니다.
그런데 본부중대에서 자꾸 그림작업으로 저를 빼갑니다.
지도도 그리고, 모형도 만들고, 대대 이곳저곳에 벽화도 그리고...
당연히 3중대와 지원소대 사람들은 불만이 쌓여갑니다.
어리버리한 이등병 주제에 박격포 배울 생각은 않고 자꾸 본부로 빠진다며, 두들겨팹니다.
저도 그만 못참고, 본부중대로 저를 옮겨달라고 작전과장에게 호소해봤습니다만...
그런데 아 이런, 이X수 3중대장님의 짬밥이 좀 더 높았네요.
이젠 소대 고참들은 물론 옆소대 고참들까지
며칠동안 저를 모질게 갈굽니다.
상병 달고서야 후임을 받았으니 소대막내를 참 오랫동안 했습니다.
병장이 될 때까지 매일 피터지도록 맞았구요, 온갖 패드립욕을 다 먹었습니다.
막사와 훈련장 구분없이 깍지, 원산폭격, 선착순, 구타가 이어집니다.
참, 지원소대엔 제 한달고참들이 무려 3명이나 있었어요.
그 중 사X균이병이 걸핏하면 때리더라구요.
이 녀석은 나중에 둘포반장이 됩니다.
머리나쁘고 포악한 사람이었죠.
아, 축구만 잘했습니다.
#3(삼) 관심사병을 거쳐 부포수로
막사생활보다 야영지생활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대공초소에서 맞느니 훈련장을 떠도는게 더 편했습니다만,
어느 작은 훈련 막바지엔 결국 다 무너져 버리더라구요.
그날 밤도 늘 그렇듯 둘포포반장 윤X훈병장의 얼차려와 폭언이 이어졌구요.
저는 다 끝나고 우리 소대장을 찾아가서 울었습니다.
그날 밤, 김X은 소대장님이 준 담배 한갑을 다 피웠네요.
탈영할 생각도 했는데, 고맙게도 절 잡아주시고 다독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현실은 시궁창이었어요.
부대복귀 후 고참들 사이에서 관심사병이 되었거든요.
구타는 확 줄었지만 갈굼은 더 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국방부시계도 천천히 돌아가긴 하더군요.
탄약수에서 부사수로 올라가면서 저같은 관심사병도 소대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김X진, 조X현 상병님, 부족한 제게 그 때 끝까지 잘 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와중에 박격포 데드리프트를 해서인지 몸도 막 커집니다.
173센티미터인 제가 72킬로까지 나갑니다.
#4(넷) 군기교육대와 병장생활
상병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날, 대대에서 소원수리가 터졌습니다.
각 중대에서 구타의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많은 놈들이 영창을 갔습니다.
우리 신임 3중대장은 나머지 상병 전원도 시범케이스로 군기교육대에 보냈습니다.
수색대대 연병장에서 4박5박동안의 목봉체조 선착순 군장구보가 이어졌어요.
제가 찌른 사건은 아니지만 저도 그동안 참 많이 맞은 사람으로서...
그 군기교육대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방관자니까 그 죄는 달게 받아야지요.
참 웃긴 게, 그동안 절 때리던 놈들은 목봉 좀 잡았다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살더군요.
몇달 전까지 날 그렇게도 두들겨패던 니들이 바로 영창에 가야했는데.
99년 7월 31일, 중대전술훈련 중간에 드디어 병장으로 진급을 했습니다.
그 전날 밤이 생생합니다... 폭우 속에서 배수로를 팠거든요.
진급 첫 날, 아침밥을 텐트 속에 가져다 줍니다.
그 후 아무도 절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병장 시작부터 말년까지 포반장 밑의 포수로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둘포포반장이란 놈이, 전역할 때까지 소각장만 맡겠다며 견장을 반납하네요.
저도 제대가 세 달밖에 안남은 상황이었는데, 소대장은 제게 그 견장을 줍니다.
그렇게 제 마지막 혹한기훈련을 포반장으로 끝냈습니다.
처음 저 이등병때처럼 어리버리하게 말이에요.
도돌이표와 같은 군생활이었습니다.
#5(오) 전역, 긴 꿈의 끝
영원할 것만 같던 제 군생활도 97년, 98년, 99년, 2000년, 이렇게 햇수로 4년만에 끝났습니다.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어느날 제게 전역증이 주어졌고, 저는 그렇게 위병소를 두 발로 걸어나왔습니다.
아마 이등병 때 군수종합지휘검열을 준비하다가 장갑차 해치가 제 머리위로 떨어졌더라면 전 영영 이등병이었겠죠.
다행히도 해치는 발 끝 10센티미터 앞에 육중한 굉음과 함께 떨어졌는데, 와이어가 탈거되어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일병씩이나 된 제 고참 둘포조종수였던 박X송씨가 한 짓입니다.
그 이름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못잊을 것 같습니다.
#6(여섯)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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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05-06-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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