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l 지고 Warm 뜬다
"쿨한 체하는 것은 또 하나의 강박"…
신파성 드라마·리메이크 음악 강세
1990년대 후반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최고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쿨(cool)’. ‘뒤돌아보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는 바보짓이다’라는 식의 사고로 대변되는 ‘쿨함’은 “일탈과 반항의 코드”(영국 사회학자 딕 파운틴·데이비드 로빈슨)로 해석되며 신세대의 사고 방식과 대중 문화를 지배했다. 특히 디지털 문화의 개인주의적 특성과 맞아 떨어지면서 ‘쿨하다=세련됐다=시대를 앞선다’ ‘쿨하지 않다=촌스럽다=시대에 뒤떨어진다’라는 인식까지 낳았다.
이 ‘쿨’이 난류(暖流)를 만났다. 드라마·영화·음악 등 대중문화는 물론이고, CF, 마케팅과 패션 트렌드까지 사회 전반이 차가운 가슴에서 따뜻한 가슴으로 이동 중이다.
◆따뜻해진 대중문화=요즘 시청률 1, 2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 ‘장밋빛 인생’과 ‘프라하의 연인’. 헤어지자마자 휴대전화에서 연인의 이름을 지우는 쿨한 커플이나 배우자의 외도를 알고도 애써 ‘쿨한 척’ 피하는 등장 인물은 없다. 새 인연을 만나지만 5년 전 사랑의 기억 속에서 헤매고(프라하의 연인), 외도하던 남편을 되돌리던 아내는 암선고를 받고, 이를 안 남편은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되돌아온다(장밋빛 인생).
영화도 마찬가지다. ‘외출’ ‘너는 내 운명’ ‘사랑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최루성 신파(新派)가 주를 이룬다. 대중음악에 불고 있는 ‘리메이크’ 열풍도 뜨겁다. 리메이크 앨범을 10만장 이상 판매한 SG워너비는 서구적인 R&B에 감성을 자극하는 트로트풍의 ‘뽕끼’를 넣어 성공한 케이스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최근 들어 가치와 질서를 역행하는 개념의 쿨 문화가 퇴조하며 주류 음악의 힘이 더 거세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러운 웜(warm) 마케팅=심플하고 세련됨을 지향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감성에 호소하는 따뜻한 ‘웜 마케팅’ 기법이 유행이다. LG싸이언 광고에는 김태희·원빈, 두 톱스타가 일상처럼 꾸밈없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작사인 크리에이티브에어 최창희 대표는 “2, 3년 전만 하더라도 쿨한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제품보다는 모델의 이미지를 앞세운 티저 광고 등이 유행이었지만, 요즘은 ‘공감’을 주는 게 우선된다”고 말했다. 화면 색도 쿨한 컬러로 통하는 회색과 청색에서 밝고 자연스러운 색으로 바뀌었다.
깔끔한 퓨전 음식을 선호하던 젊은층이 묵은지, 간장게장 등 전통 음식으로 회귀하는 현상도 쿨 문화 쇠퇴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왜 쿨이 싫은가=강요받은 쿨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데다 한국적인 환경에 안 맞는 정서라는 지적이다. 두 달 전 쿨한 사랑으로 상처받는 젊음을 그린 소설 ‘너는 마녀야’를 펴낸 작가 오현종씨는 “쿨이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하나의 강박(强迫)이 되면서 가볍지 못하기 때문에 가벼운 체 가장해야 하는 모순까지 낳았다”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따뜻한 감성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원생 장휘(30)씨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애초부터 안 맞는 정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 김미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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