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업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에 `전자왕국의 맏형`의 위상을 무참히 짓밟혔던 일본 전자업체들이 이제 칼날을 갈고 반격에 나서고 있다. 왕년의 `가전 황제` 소니가 공식적으로 가전 명가 부활을 선언한 가운데 파나소닉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시타, LCD-TV의 최강자 샤프, 전통의 히타치와 미쓰비시 등도 지난 몇 년간의 설움을 털고 명성 찾기에 올인했다.
`디지털 가전`의 신화를 새로 쓰며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미주 시장에서 눈부신 선전을 펼친 한국 업체들이 부활한 일본 전자회사들과 벌이는 제2라운드의 혈전을 짚어본다.
지난해 9월 일본 가전업체의 대명사 소니가 `브라비아`란 이름의 LCD TV 전용 브랜드를 새로 출시했다. 당시 소니는 실적 부진으로 사상 최초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는 굴욕을 겪었고, 회사 안팎으로도 이런저런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소니가 이전에 출시한 TV 브랜드 `트리니트론`과 `베가`가 큰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에 `브라비아`에 대한 관심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니는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북미 시장에 브라비아 브랜드로 26인치부터 40인치까지의 5종의 LCD TV 신제품을 대거 쏟아냈다. 삼성, 샤프 등 주요 경쟁회사보다 대폭 낮은 판매가격을 책정하는 대담함을 보였고, 광고비로도 역대 최고치인 1억4000만달러를 집행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당시 소니의 추바치 료지 사장은 "소비자보다 한 걸음이 아니라 반 걸음 앞선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전이 아니라 수익성 개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대를 앞서가는 상품을 내놓으며 전자업계 트렌드를 선도해 온 소니로서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높은 기술력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믿고 유아독존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던 소니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다.
◇소니 `브라비아`로 화려한 재기
소니의 `모 아니면 도`식 모험은 결국 성공했다. 브라비아 LCD TV가 출시 3개월 만에 미국에서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미국의 LCD TV 시장에서 소니의 점유율은 15%를 기록하며 이전 분기 7%에서 배 이상 늘었다. 32%대를 유지하던 부동의 LCD TV 1위 샤프는 소니의 공세로 점유율이 18%로 급감했고 한국 업체들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소니는 올들어 더욱 점유율을 늘려가며 1위인 샤프마저 제쳤다. 시장조사기관 NPD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5월 말까지 누계로 미국 LCD TV 시장에서 소니는 16.1%의 점유율을 기록, 15.9%인 샤프를 따돌렸다.
브라비아는 LCD TV 업계에서 후발 주자에 불과했던 소니를 TV 명가로 부활시켰다. 사세가 계속 기울기만 하던 소니를 반전시킨 결정타였던 셈이다. 브라비아는 현재 북미를 찍고, 유럽으로도 무섭게 영토를 늘려가고 있다.
브라비아의 성공은 소니의 실적 호전으로도 이어졌다. 소니의 2005 회계연도(2005년 4월∼2006년 3월) 매출액은 전년비 4.4% 증가한 7조4754억엔, 영업이익은 67.9% 늘어난 1912억엔을 기록했다.
특히 순이익은 올해 1월 제시했던 700억엔보다 크게 증가한 1236억엔에 달했다. 게다가 엔 약세 영향으로 514억엔가량의 환차익도 얻었다. 소니도 실적 호전의 주 원인이 브라비아의 판매 호조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마쓰시타·샤프 `우리도 있다`..설비투자 적극 강화
실적 호전을 기록한 일본 업체는 소니 뿐만이 아니다. 파나소닉을 보유한 PDP TV의 지존 마쓰시타 역시 2005 회계연도의 영업이익이 4143억엔에 달해 15년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출액도 전년비 2.1% 증가한 8조8900억엔, 순이익은 배 이상 증가한 1544억엔을 나타냈다.
소니의 반격에 약간 주춤했지만 LCD TV의 강자 샤프 역시 2005 회계연도에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샤프의 2005 회계연도 영업이익 1640억엔, 순이익 890억엔, 매출 2조7970억엔은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샤프는 올해 안에 새 공장을 가동, 생산량을 대폭 늘릴 예정이어서 4년 연속 사상 최고치 실적 경신도 기대하는 눈치다.
◇일본 경제, 최장기 호황..전자산업 부활의 `단단한 받침돌`
일본 전자업체 부활은 일본 경제의 호황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기업들을 더욱 긴장시킨다. 지난 5월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6% 올라 8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며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과의 이별을 확실하게 선언했다. 실업률도 4%에 그쳐 지난해보다 30만명이 줄었다.
현재 일본은 2차 대전 후 두 번째로 긴 호황 기간인 4년 4개월째 경기 확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 추세가 올해 11월까지 계속될 경우 최장기 활황기인 `이자나기 경기`마저 제칠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 부활의 일등공신이 일본의 기업들이라고 지적한다. 일본 기업들의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14.5%에 달해 지난 1989년 이후 17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초입에 한국기업들이 디스플레이와 디지털미디어에 대한 공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설 때 몸을 사리는 바람에 추월을 허용했던 일본 기업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과감한 설비투자로 명가재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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