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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0EXR] “불멸 또는 황홀”의 초대

호박넝쿨 | 02-05 12:43 | 조회수 : 2,339 | 추천 : 4


 

 

 

 

산악사진작가 안승일(1946년생)


"한반도에서 보는 백두산은 중국 산이에요. 중국 땅을 밟고 주봉(主峯)인 장군봉을 찍어야 진짜 백두산 사진이죠.
통일 돼도 나는 중국에서 백두산을 볼 겁니다."

 

 

 

 

 

설 연휴 마지막날인 일요일,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안승일 산악사진작가의 백두산 촬영 20년 결산 사진전에 다녀왔다.
지난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오로지 백두산 하나만 카메라에 담아온 안 작가의 집념과 혼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사진들을 보고 무한안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우리가 여태껏 보아왔던 백두산 모습을 상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상1층~지하4층까지 5개층 9개전시실(1025평)에 20년동안 찍어온 수만컷 백두산 사진들 중에서 추려낸
160여점(백두산 풍광70여점/자생식물70여점/곤충짝짓기20여점)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있다.
초대형 사진들을 비롯해 5개층 9개전시실 모두 그의 작품들로만 채운 전시장의 규모.. 모든면에서 그 스케일 또한 대단했다
감동.. 그 자체다.


그의 사진전 “불멸 또는 황홀”속에 빠져본다
 

 

 

 

 

 

 

 

 

 

 

 

 

 


 

 

 

 

 

백두산은
만주벌 지평선 위에 불멸로 솟아났다
천지 수평선 속으로는
물구나무 선채
황홀하다

 

끝내
백두산은
한민족 역사에 불멸이다
통일의 그날이 어서 오길 비는
배달겨레 영혼 속에 황홀하다

 

안승일 사진을 보라
백두산에서 무르익는
통일의 꿈이 얼마나
황홀한지

 

 

- 박인식

 

 

 

 

 

 

 

 

 

 


 

 

 

 

 

1994년, 자칭 ‘또라이’ 산악인 사진쟁이 안승일은 산악인 글쟁이 박인식이 백두산 가자고 꼬드기는 통에 인천항에서 배를 탔다.
북한땅 삼지연으로 해서 장군봉에 가야지, 그까짓 중국 쪽으로 가는 게 무슨 백두산이냐고 투덜투덜대면서 난생처음으로 천문봉(天文峰)에 올라갔다.


1994년 4월 25일, 바다처럼 파도 치는 천지(天池)와 그것을 둘러싼 열 여섯 봉우리들을 만나던 순간, 영혼이 얼어 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밀려드는 경외감으로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말았단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이 산(山)’에서만 ‘저 산(山)’을 제대로 보는 이치로, 한반도에서 보면 중국 장백산이고
중국 쪽에서 찍어야만 진정한 백두산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는 거다.
안승일은 이때부터 꼬박 20년 세월을 백두산에만 매달려서, 백두산 사진만 줄기차게 박았다.


아예 백두산 하늘 아래 첫동네 이도백하(二道白河)에 작업실을 차리고 1년 중 8개월 이상은 백두산을 헤매고 다녔다.
간첩질로 오해한 ‘변방참’(국경수비대 초소부대)에 체포된 일도 여러 번이다.
날씨도 좋았는데 그만큼 봐줬으면 얼른 찍고 갈 일이지, 왜 그리 오랫동안 국경을 어슬렁대느냐는 거였다.
나중에는 그 군인들과 도수 높은 중국술을 나눠마시며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중국인들은 그를 ‘장백산 괴물’이라고 부른다 - 경향신문 기사 중에서
 

 

 

 

 

 

 

 

 

 


 

 

 

 

 

20년간 백두산만 찍었다, 더 이상의 백두산 사진은 없다

 

그는 스스로를 “사진가 이전에 산악가이고, 그 이전에 한민족” 이라고 말한다.
통일로 가는 빠른 길 역시 백두산에 있다고 믿는다.
“누구라도 백두산에 오르면 모두가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임을 느낄 수 있어요.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과 북이 한민족임을 알리기 위해 찍는거죠 ”

 

 

 

 

 

 

 

 

 

 


 

 

 

 

 

지난 20년사이 그는 누구도 본 적이 없어 사진으로 말해 본 적이 없는 백두산의 참모습을
“발견” 하기 위해 만주벌판을 헤매었다. 원시림이 바다를 이룬 그 숲속에서
백두산은 그 먼 모습을 좀체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숲 속 나무와 나무 사이로, 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퍼붓는 빗줄기나 눈보라 너머로
언제나 고개 들고 나타날 백두산의 또다른 모습이 맑게 갠 하늘선을 가르며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또 걸었다.
 

 

 

 

 

 

 

 

 

 


 

 

 

 

 

그저 방황만 계속될 뿐 열흘 보름이 지나도, 셔터 한번 눌러보지 못하는 그 낯선 세계 속에서
그 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백두산의 신화시대에 가까이 다가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길에 자신이 서 있다는 믿음이 들 때마다 그는 그 황홀함에 온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 황홀함 끝에서야 백두산은 반갑다며 두 팔을 벌려 맞아주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게 불멸은 아니다.
백두산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도 영원히 살아 남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에 완전히 동화되어
자신을 완벽하게 잊어버리는 그 순간만이 영원불멸하는 존재가 된다.

 

 

 

 

 

 

 

 

 

 


 

 

 

 

 

정녕 백두산은 바람의 산이다.

숲이 바다를 이룬 만주벌판에서 피어오른 뭇 생명체의 숨결과
천지 물줄기와 그 언저리 목숨 붙였던 여러 민족의 신화, 염원과 그리고 열망과 역사가 흘려 보낸
시간의 흐름이 바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산.
그는 백두산과 한몸으로 어울리면서 그 바람에 몸을 씻었다.
 

 

 

 

 

 

 

 

 

 


 

 

 

 

 

바람과 구름의 집이라 부를 수 있는 만주벌에서 원경의 백두산 바라보기는
잔물결 일지 않는 천지를 대하기보다 더 귀하다.
백두산의 연 강수일은 200일이 넘는다.
우기인 7,8월은 거의 매일 비가 오고 미친 바람이 사방팔방에서 불어댄다.
하지만 누구도 훔쳐 본 적이 없는 백두산의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그 짧은 “허락의 순간”에 안승일은 거기 있어야 했다.
 

 

 

 

 

 

 

 

 

 


 

 

 

 

 

백두산 천지 호숫가에 노랗고 빨간 집을 지었다.
그 집에서 천지와 천지속에서 거꾸로 일어서는 여러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그는 백두산과 한몸되는 일체감으로 황홀했다.
백두산은 천지로 말미암아 이 세상 어떤 산도 흉내내거나 좇아올 수 없는
“유일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지가 있어 백두산은 하늘 기운을 고스란히 넘겨 받을 수 있었다.
천지는 백두산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 부를 만 했다. 

 

 

 

 

 

 

 

 

 

 


 

 

 

 

 

겨울철은 수은주가 영하 30~40도까지 꼬나박는 천지 주변 눈구덩이에서 “곰처럼” 동면했다.
눈보라 땜에 밖에 못 나가면 천막집에서 김치전 부치고, 눈 녹인 물로 커피 타 마시고, 멸치 육수 내서 칼국수도 해먹었다.
일출 하나 건지려고 서백두 청석봉 산마루에 눈구덩이를 파고 들어앉은 게 “100번에서 1000번 사이”란다.
 

 

 

 

 

 

 

 

 

 


 

 

 

 

 

그가 백두산의 진경을 발견하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기까지 서너 차례 죽음의 문턱을 들락거려야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산에 던져버린 산사진가는 우리들 인간 운명의 위대함에 눈 뜨게 한다.

 

 

 

 

 

 

 

 

 

 


 

 

 

 

 

장백산은 그냥 눈으로 부르는 자연스런 산 이름이다.
백두산은 뜨거운 가슴 속의 피가 부르는 사랑의 이름이다.


때문에 장백산이라 부르는 사람들과 백두산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각자 이 산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마음 속을 차지하는 비중에는 장백산과 백두산의 차이, 다시 말해 중국인과 한국인의 차이로 벌어진다.
이 산을 두고 우리가 백두산이라 부르는 것을 중국 한족들이 시비를 걸지 않듯,

중국인이 장백산으로 부르는 것을 못마땅해 할 것도 없다.

장백산으로 알고 이 산을 찾으면 장백산이 되고, 백두산으로 알고 이 산을 오르면 백두산이 된다.
중국인들이 이 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보다 자연스러웠다.
우리가 이 산에서 민족혼을 찾았다면,중국인들에겐 그들의 10대 명산중의 하나일 뿐 이다.
 

 

 

 

 

 

 

 

 

 


 

 

 

 

 

長白은 ‘오랫동안 희다’라기 보다 ‘늘 희다’로 새겨야 한다.장백산이 그 위에 덮인 눈 때문에 늘 흰 것은 아니다.
눈이 녹아도 희다.눈이 녹아 그 밑의 산등성이가 드러나도 흰 빛이기를 멈추지 않는 장백산이다.


천문기상대가 세워진 후 천문봉으로 된 그 봉우리의 원래 이름도 흰 바위를 상징하는 백암봉이었다.
이 봉우리를 가운데 두고 솟아오른 크고 작은 암봉들은 거의가 흰 빛을 띠고 있다.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던 까마득한 시절에 화산이 솟구친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흰 색의 거품돌들 때문이다.

 

 

 

 

 

 

 

 

 

 


 

 

 

 

 

장군봉 위로 솟아오르는 해가 연출해 줄 아침노을의 장관을 잡아내고 싶었다.
하지 앞뒤로 열흘쯤 장군봉과 천지를 사이에 두고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이 삼년이 걸렸다.
하지 때마다 그는 청석봉을 신새벽에 올랐고, 사 오십번 거듭되어도 장군봉 일출사진을 찍지 못했다.
매번 해는 어김없이 떠올라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청석봉 오르기를 거듭한 2006년 하지 때쯤,장군봉 해오름과 마주칠 수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손에 거머쥐는 데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흘려보내야 했다.

 

 

 

 

 

 

 

 

 

 


 

 

 

 

 

백두산이 어떤 산이며 그가 백두산과 맺은 그 운명 같은 내밀한 관계를 알지 못하면
그의 작품들을 평범한 풍경사진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따로 있다.
뭣보다 이 사진들은 ‘유일’할 수 밖에 없다.그는 이런 광경을 바라본 유일한 인간이며
그 속으로 들어간 첫번째 인간이므로.
신화시대의 웅녀가 환생하지 않는 한 누구도 흉내낼수 없다는 거다. 누가 20년간 백두산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아무도 백두산이라는 시간 속으로 이토록 멀리 걸어 들어간 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진이 될 만한 자리를 찾는 어려움, 온 인생을 보내는 듯한 기다림,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왔을 때의 설레임,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눌러대는 셔터… 사진은 애타고 힘겨운 일이지만 그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카메라를 조작하는 기본 기술은 하루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해도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에는 경험을 구체화시키는 재능이 필요합니다.

…빛을 읽는 감각도 중요하지만 피사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우선입니다. 그것은 피나는 자기 완성의 과정이지요.
…산에서 죽는 것은 나의 소망입니다. 그 날이 멋진 사진 한 장 카메라에 담아 둔 날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 사진은 어떤 것일까요. 내 뼈가루가 마지막 산에 훨훨 날리는 그 날은…”  

 

 

 

 

 

 

 

 

 

 


 

 

 

 

 

한민족이면 누구건 백두산정에 서면,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는 하늘 목소리를 듣게된다.
안승일은 그 목소리를 7000만 배달겨레에게 영상으로 전해주고 싶었다.
그 영상화된 하늘 목소리가 통일의 불씨를 살려내길 꿈에서 조차 바랬다.
그러자니 백두산에서 견뎌낸 20년의 세월은 결코 길지도 외롭지도 고달프지도 않았다.
 

 

 

 

 

 

 

 

 

 


 

 

 

 

안승일씨는 세시간 항공촬영에서 이 사진을 찍고나서 어쩌다 이런 사진이 찍혔을까, 알수 없다며 혼잣말을 했다.
“내가 찍기는 정말 찍은 건가.또 다시 이런 분위기의 사진을 만들 수 없을것 같다.”
 

 

 

 

 

 

 

 

 

 


 

 

 

 

 

“감히 백두산의 영혼을 찍고자 했다. 더불어 백두산에 숨쉬는 민족혼도 담으려 했다”고 힘차게 말한다.


안승일은 민족의 조종산(祖宗山)인 백두산에서 마늘 먹고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았다는
곰에 더 가까워졌다(그의 별명이 백두산 곰이다). 그런 애니미즘 신앙을 가졌던 고대 사람 같달까.
전시회 개막식 날, 원래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백두’의 안승일이 사람들 앞에서
“이제 더 이상의 백두산 사진은 없다. 통일이 될 때까지 더는 백두산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재주가 아무리 좋단들 어느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해? 산에 구덩이 파고 먹고 자면서 사진 찍을, 그런 놈 없어!”

 
이제 산악사진작가 안승일은 백두산 생활은 마감하고 그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던 삼각산(북한산)으로 돌아가
사진과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고 한다.
 

 

 

 

 

 

 

 

 

 

 

 

 

 

- 마무리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침,
하늘은 잔뜩 흐리고 짙은 안개까지 겹쳐 어둑어둑한 날씨에, 거기다가 겨울비까지..
며칠전,백두산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뒤, 작가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해서 미리 검색을 해봤습니다(제가 무식한지라).
 
산악계와 사진계에서 제법 알려진 분 이더군요. 20년간 백두산만..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습니다.
결론은, 설 연휴 마지막날 인사동에 가서 감동의 보따리를 마음속에 한 아름 품고 왔습니다.
이른시간 때문인지 날씨 덕인지 몰라도 한적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안승일 작가님도 직접 뵐수있고 사진 촬영도 허용 됩니다.조용히 티내지 않고 찍는게 좋겠지요.
전시회 끝나기 전에 카메라 팽개치고 한번 더 다녀올 생각입니다.

 

함께 올린 글들은 대부분 전시장에 사진과 함께 게재된 산악인겸 작가, 박인식님의 글 입니다.
그중 부분부분 내용만 발췌를 해서 사진과 함께 첨부해서 올려 봤습니다.


오랫만에 컴퓨터 앞에 몇시간을 앉아서 꼼지락 거리는것도 쉽지가 않네요.
자르고, 리사이즈 하고 몇장씩 이어붙이고,글 쓰고,,,,에효,허리도 쑤시공^^
그러나 후지동 회원님들을 위해서라면 뭐 이정도야~

 

정말 놓치기 아까운 사진전 입니다. 이런 기회가 또 다시 찾아올지 모르겠네요.
시간내서 꼭 한번 다녀 오세요. 아니,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다녀 오세요.
직접 가셔서 감동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아라아트센터는 인사동 9길에 있습니다.
자세한건 http://www.ara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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