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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부상과 삼성의 몰락을 보며

멍멍고냥씨 | 10-24 02:04 | 조회수 : 3,370 | 추천 : 3

해외시장 사정이야 잘 모르겠고
적어도 국내 카메라시장에 한정하면
삼성이 2009년~2012년까지 매섭게 달리다가
2013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을 보는 기분이 뭐랄까... 참 묘하네요.
그리고 2012년부터 급부상한 소니의 도약도...

간혹 글 읽어보면 소니가 했던 것처럼 FF미러리스를 안 내서 망했느니 어쩌니 하는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FF가 그렇게 만만한 시장이 아니거든요.
업체 입장에서 비싸게 팔 수 있고 삼성카메라 정도면 충성도 높은 유저들이 있다고 하지만
콘탁스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시겠죠?
또 펜탁스가 풀프레임 개발을 2000년대 초반에 다 해놓고도 15년이 지나서야 양산에 들어가게 된 것도...
제가 봤을 땐 콘탁스나 펜탁스 마니아들이 삼성보다 더하면 모를까 덜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게다가 펜탁스나 소니는 최소한 렌즈군이 사전에 어느 정도 구축이 돼 있었습니다.
펜탁스 FF DSLR은 당장 새 FF용 렌즈가 안 나와도 필카 시절 스타렌즈나 리밋렌즈를 물려써도 되고
소니의 경우 렌즈 어댑터만 있으면 자이스 렌즈와 G렌즈를 그대로 A7에서 큰 문제없이 쓸 수 있죠.
반면 삼성은 풀프레임 NX 내려면 아예 렌즈를 다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게다가 일본 회사들처럼 자기네 아니라도 호환렌즈 내줄 서드파티가 없고요.
(삼양이 있긴 하지만 AF렌즈를 거의 안 내는 곳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인지도나 브랜드 점유율을 떠나 FF를 내기 어려운 조건이 엄청 많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FF를 고려해 렌즈 설계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랬다가는 렌즈 사이즈가 커지고 가격도 더 비싸지니 어려웠을 테고...
현실성과 투자효율을 놓고 보면 FF를 내야 하는 이유보다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더 많습니다.
당장 삼성의 다른 계열사인 삼성SDI는 중대형전지 분야가 지금 전기차시장 성장과 ESS 수요 때문에
엄청 가능성이 큰 분야인데도 투자비용 많이 잡아먹었다고 (폭스바겐 사태 이전까지) 증권가에서 줄창 까였습니다.
(뭐 이건 스마트폰 부품 실적이 예상보다 너무 안나와서 말아먹은 게 더 크지만)
그만큼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냐는 회사 입장에서, 특히 여러 사업에 손대는 회사에는 중요한 문제인데
당장 이 상황에서 그만한 돈이 있어도 삼성이 투자 1순위로 FF 미러리스를 놓을 일은 없었겠죠. 열 손가락 안에도요.

오히려 소니의 성공은 A7 이전에
셀피용 미러리스 카메라와 NEX-7, RX 시리즈가 더 큰 몫을 했다고 봅니다.
셀피용 미러리스 카메라로 레드오션이라던 카메라 시장에서 신규 수요를 창출했고
그것도 모자라 경쟁사들마저 셀피 카메라를 내게 할 만큼 흐름을 주도하게 됐죠.
(지금 펜탁스 말고 셀피용 미러리스 카메라 안 내는 곳이 없을 정도면 말 다한거죠)
거기다가 RX 시리즈는 명맥만 이어가던 하이엔드 카메라 시장을 완벽히 되살렸고...

이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A7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셀피용 미러리스와 NEX-7, RX 시리즈의 성공이 큰 몫을 했다고 봅니다.
이미 소니는 A7이 나오기 1년 전에 캠코더 분야에서 풀프레임 미러리스 시스템을 구축해 출시한 바 있습니다.
영상장비의 경우 이미 레드원이 대형 센서를 갖춘 장비로 대세가 되고 있었던 지라 선례가 있고
소니 나름대로 영상업계에서 지분이 있었기 때문에 시장성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반면 2011~2012년 당시 미러리스 분야는 전문가가 쓰기 부족하고 시장성도 취약했죠.
그러다가 2011년 NEX-7을 통해 전문가용 미러리스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줬고
(게다가 후지필름이 X-Pro로 미러리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죠.
2012년 NEX-F3와 RX100으로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이듬해 A7이 나올 기반을 잡게 됐습니다.
NEX-7과 NEX-F3는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소니의 위상을 확 바꿔놨고
RX100은 화질과 성능에 집중하면 시장 자체가 열악해도 돌파구가 있다는 걸 증명했죠.
아무리 소니라도 FF 미러리스를 내기가 쉽지 않고, 이처럼 나름대로 꾸준히 준비를 했던 거죠.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적인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준비를 말이죠.

저도 삼성카메라 사업 접는다는 루머가 나왔을 땐
이재용 부회장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삼성 경영진들 미친 거 아냐?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납득을 합니다.
물론 단기적인 성과를 못 내는 것의 문제도 없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카메라 업계에서 성장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리더가 삼성에 없었습니다.
'아버지(이건희 회장)가 깨어나면 노발대발하겠다'는 분도 있지만
제가 봤을 땐 아버지가 아끼던 사업을 더 잘 꾸릴 자신이 없다면 아예 망치기 전에 접자고 판단하는 게
더 아들다운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 감정이 격해져서 접는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주지하자면 현재로서는 접거나 철수가 아니라 '사업 축소'입니다. 죄송...

그 결과 셀피용 카메라를 2009년부터 내면서도 이걸 미러리스와 연결할 생각을 못하다가 한순간에 소니에 다 따라잡혔고,
(고급 사용자를 노렸지만 초기 제품이 기대에 못미쳤고 마케팅은 저가제품 파는 식이었으니 중구난방이었죠)
전문가는 커녕 대중들도 외면한 갤럭시카메라와 갤럭시NX나 내놓다가 경쟁사와 격차가 더 벌어지고
결국 나중에서야 셀피용 미러리스로 라인업을 갈아치우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 와중에 NX미니를 따로 내놓지만 이쪽은 소니 RX가 이미 선점한 데다 GF7이 따라잡으면서 생각만큼 성과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역으로 파편화 문제만 키웠죠.

경영자 입장에서 이런 실망스런 제품만 나오는데 그게 자기가 만든 거든 아래사람들이 만들었든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면 비전이 없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삼성이 10년 전 V4를 내놓을 때부터 꾸준히 했던 말이 "몇 년 후에 시장점유율 몇 위까지 올라가고...."
이런 식이었던 게 단순히 립서비스가 아니라 그 정도로 목표를 갖고 차근차근 성장할 수 없다면
카메라 사업을 계속해서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카메라 시장 자체가 레드오션이 된 데다 실축마저 늘면서 그런 믿음마저 깨진 거죠.

카메라도 스마트폰도 레드오션인 판국에
스마트폰은 적어도 애플의 대안이나 안티테제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지만
카메라는 그렇게 몇 년동안 마케팅에 투자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뭐 카메라사업부나 관계사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삼성이 지난 몇 년간 스마트폰, TV만은 못해도 다른 가전제품보다는 더 많이 더 열심히
카메라를 밀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적어도 삼성은 할 만큼 다 했다고 봅니다.

오늘 삼성카메라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모 관계자와 전화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저나 다른 삼성카메라 유저가 원할 만큼 시원한 답은 못 들었지만
(사정상 이에 대해 정확히 털어놓을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요약하면 이미 알려진 것 외에 새로운 정보는 듣지 못했습니다. 사업 철수 여부에 대해서도 그런 기사 나온 것 말고는 모른다고 하고...)

뭐 저는 예전에 삼성이 GX 라인업을 접을 때도 비슷한 반응을 본 적이 있는지라 대충 이렇구나 하고 감만 잡고 있습니다.
아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삼성은 GX 라인업을 단종할 때도, 캠코더 사업을 접을 때도 공식적으로 알린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성의 반응을 기다려 보자는 분들의 얘기에 반박은 못 하겠지만, 제가 더이상 삼성에 어떤 기대도 못할 것 같네요.
NX미니2나 NX500의 후속모델은 기대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삼성 똑딱이 4총사(V4, NV10, NV11, WB500)를 비롯해서 가족과 지인에게 넘긴 EX1과 ST10,
그리고 리뷰일하면서 만져봤던 셀 수 없이 많은 녀석들까지... 함께한 그 순간이 재미있었는데 이제 완벽하게 지난 추억이 됐습니다.
NX미니2나 RX100에 버금가는 하이엔드가 나오면 똑딱이 5총사를 만들려고 했는데... 안 됐네요.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다른 분들이 바라듯 FF 미러리스 시장이라도 노리고 작게나마 다시 구축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스마트폰도 옴니아2로 몰락했을 때 갤럭시로 되살렸잖아 생각하면서 말이죠.

어쨌든 지금은 삼성카메라가 저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고, 또 안타까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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