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어느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와이프와 산책 겸 가벼운 동네 출사를 나갔습니다.
늘 출근 길에 바쁘다보니 아침 시간대의 스냅을 찍어본 적이 없어서
한번 나가보려고 했더니 와이프도 자기 똑딱이 들고 따라 나서고 싶다 하더라구요.
그렇게 둘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웬 나비가 한마리 제 카메라에 와서 앉습니다.
경험하기 힘든 일이라.. 저는 그대로 얼음!
와이프보고 빨리 담으라고 했습니다.

날아가버리면 어떡하나 ... 하면서 조심조심 찍었는데... 
이 나비...
한번 살짝 날더니
다시 제 팔에 앉습니다...

이런 성격의 나비도 있나... 싶더라구요.. 
살짝 아파보이기도 하고...
아파서 지금 정상적인 상황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인가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와이프에게 당신 손에 살짝 올려보라고 하니
나비 자기가 알아서 슬슬 올라갑니다.
 
저도 손에 올려보고 싶어서 
살짝 손을 뻗으니 곧잘 올라옵니다.


그런데... 확실히, 이 나비가 좀 이상한게... 
꿀을 찾나싶어서 꽃에 놓아주려니... 꽃을 거부합니다.
마치 목욕시키려는데 싫어서 뒷걸음치는 강아지나 고양이 처럼요.

몇 번을 시도해도 제 손등에만 주둥이로 짚어대고... 
꽃에는 올라탈 생각을 않습니다.

집에가서 설탕물이라도 줘야겠다 싶어서... 손에 올린채로
집으로 이동-

그러다가 아까보다 큰 꽃이 보여... 거기는 올라가려나 하고
올려주려고 해봤는데...
또 거부하고.... 갑자기 이리 저리 날다가 굳이 찻길쪽으로 가더라구요...
힘없이 픽 찻길 가쪽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가보려
하다가.... 오던 차의 바람에 휩쓸려서... 어디론가... ㅠㅠ

혹시 죽었으면 사체라도 찾아보려 했는데 사체는 보이지 않더라구요... 
아직 손등에 그 나비의 촉촉하고 부들부들한 주둥이의 
감촉이 남아있는데...
맘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이자 각오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스냅이란 장르를 찍을땐...
"절대 피사체에 손대지 말자" 는....

평범한 일상 스냅이나 찍고 다니는 초보한테 무슨 미적 감각이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어쩔땐, 아주 가끔씩,
피사체를 조금만 이동시키거나 뭔가 연출하면
더 좋은 사진, 더 재밌는 사진이 될 것 같은 유혹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며,
그 유혹을 고이 잠재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허접한 사진이 작품으로 탈바꿈 되는 것도 아니며,
더 나은 사진좀 찍어보겠다고 했던, 나의 작은 행동하나가
피사체(특히 동식물) 입장에선 큰 불편이나 피해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서요.
사진에 대한 철학이나 소신 운운할 꺼리도 없는 초보찍사입니다만,
자신이 찍히는 줄 모르는 사이 사진에 담기는 피사체들
혹은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할 수 없는 피사체들을 배려하는 것은
스냅의 가장 기본적인 매너이며,
거의 모든 사진 장르의 공통 분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름에 적어두었던 뻘글입니다만, 올릴 타이밍을 놓쳤다가
연말의 센치함과 더불어 올려봅니다. ^^;
긴 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해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만, '연출'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님을 밝혀둡니다-
*나비 사진외 사진들은 같은 날 찍은 것이 아니라, 이야기 구성상 끼워넣은 짤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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