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걷기님께서 장르를 옮기셨냐고 하셨는데유.....
판타지풍의 조각글은 이전에도 스르륵에는 몇 번 써서 올린 적이 있어유....
그 중에서..... 작금의 스르륵 사태를 보며 떠오르는 '몰락'이라는 키워드로 썼던 글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원래는 코닥의 몰락을 모티브로 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읽으셨던 분은 걍 패스하시고, 주말이 심심하신 분께는 몇분간의 소일거리라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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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큼지막한 돌덩이가 치였다. 순간 휘청인다. 느껴지는 것은 아픔은 아니다. 그저 아직은 살아 있음이다. 머리 속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묵직한 방패를 들고 대형에 뒤쳐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저 멀리 마주쳐 달려오는 적의 보병들이 보인다. 그래도 달려야 한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조금이라도 걱정이란걸 할 여유가 있다면-적의 손에 들려 있는 장창과 검이 아니다. 뒤쳐지는 아군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매질하고
처형하기까지 하는 전투독려대다. 어느 틈에 적군의 선두가 지척에 이르렀다. 반제국 연합 특유의 무지개빛 계급장이 눈을 어지럽힌다.
일순간 적군 병사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이 보이는 듯 했다. "전원 방패앞으로" 밀집보병대를 지휘하는 뮐러남작이 목청껏 명령을 내지른다.
어차피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부지하려면 방패로 막아내는 수 밖에 없다. 맨몸으로 전장에 내몰리는 농노병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쿵-쿠웅" 방패와 방패, 방패와 창이 부딪히며 비명을 지른다. 비명을 지르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푸-슈-욱" 창을 받아내는 연약한 육체가 내는
스산한 소음이 귀를 어지럽힌다. 온 몸을 떨리운다. "쿵"방패로부터 시작된 충격이 팔을 타고 두개골을 울린다. 순간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저 버텨야 한다는, 원시적 선조로부터 이어져왔을 원초적인 생존본능만이 팔에 힘을 주게 할 뿐이다. "크윽..." 팔이 얼얼하다. 다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런걸 따지는 건 사치다. 버틴다. 버.틴.다. 버텨야만 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외침이 귓가를 울린다. 한 순간 뒤에야 그것이 뮐러 남작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반보로 후퇴! 대형을 유지하며 반보로 후퇴!" 여간해선 후퇴명령을 내리지 않는 뮐러남작이지만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무의식적으로 명령에
따른다. 뒤로 물러서는 방패병 앞으로 아군의 농노병들이 양손에 조악한 창을 잡고 내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후퇴를 위한 희생양이다.
아니, 희생양조차 되지 못함인지 곧 적의 기사들이 눈앞에 다가선다. 순간 의아함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먼발치에서만 보이던 적의 기사단이었다.
장창병이나 방패병이 아닌 기사단이라니. 기사단이라니. 갑자기 눈앞이 환해진다. 시야를 가리던 농노병들이 짚단처럼 쓰러지는 모습이 동공을 채운다.
우습다. 기사들이 휘두르는 칼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받아내는 농노병이 없다니. 아니, 전혀 우습지 않다. 눈앞에 기사의 검이 다가온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검이 잘 버려져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마치 자신이 고향 대장간에서 벼려내었던 낫의 번뜩이는 날과 같다. "챙" 다음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측 기사다. 본격적인 기사전이 시작되었나 보다. "보병대는 전열을 재정비하라" 이제는 목마저 쉬어버린
뮐러남작의 명령이 귓가를 때린다.
그때다. 하늘에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생긴 것은. 그리곤 그 점은 잉크가 번지듯이 커진다. 어느 순간 붉은 원이 되었다. 타오른다. 아름답다.
하늘 중앙에 고정된 불덩어리다. 너무나 붉어 하늘 한가운데 붉은 장미꽃이 피어있는 듯 하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로지른다. 아니다. 떨어지고 있다. 커진다. 미끄러진다. 떨어진다. 그리곤 더 빨리, 하늘을 가로질러온다. "맙소사.... 메테오라니...."
뮐러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린다. 그리곤 주저앉아 버린다. 넋이 나간 표정이다. 어느 틈엔가 주변의 공기가 덥다고 느꼈다.
갑자기 몸이 떨린다. 도망쳐야만 할 것 같다. 한번 일어나기 시작한 공포가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가득 차 온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있다.
뒷걸음질이 빨라진다.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던 전투독려부대에 대한 공포도 느낄 겨를이 없다. 어느새 뒤돌아섰다.
눈앞의 모든 병사들이 전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뛰고 있다. 달아나고 있다. 아니, 모두는 아니다. 넋이 나간채 멍하니 서 있는 병사들이 보인다.
기사들과 부대장들이 보인다. "어떻게... 어떻게...." 누군가의 독백이 귀를 스친다. 마지막 단어는 너무 멀리서 들리는 탓에 알아 들을 수 없다.
멀어진다?. 그 기사는 넋을 잃고 앉아 있었는데 소리가 멀어지다니…. 그제서야 눈 아래 대지가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땅이 좌우로 흔들렸다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불과 한식경 전에 지나왔던 들판이 이리도 울퉁불퉁했던가. 자신도 모르게 전력질주하고 있었음이다.
갑작스레 하늘이 어두워짐을 느낀다. 땀이 온 몸에 흐른다. 무언가 거대한 것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고다악 제국의 모든 맹수를 다 모아
울부짖게 하면 저런 소리가 날런지. 그리곤 무언가 대지를 부딪혀 오는가 싶더니 발 밑의 대지가 출렁인다. 기우뚱.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아니다. 가눌 몸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추인 것은 버섯모양으로 거대하게 피어오르는 붉은 구름이었다.
그리곤 모든 것이-그의 의식마저도 붉게 물들었다.
제국력 2012년 고다악 제국은 반제국 연합에 패하여 제국의 영광뿐 아니라 독립국의 지위마저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국이 이론을 정립했던 메테오 마법 때문이었다. 아직은 기사와 밀집방패병의 시대라며 오만한 제국이 안위하는 동안
반제국 연합에서 먼저 메테오 마법을 실현해 냈던 것이다. 너무나 절실했던 그들은 제국을 속이기 위해 자국의 기사들마저 메테오의 범위 안으로
밀어 넣었고, 자신들의 힘에 대해 너무나 자신하였던 제국은 단 한 번의 전투에서 모든 정예병력과 기사들을 잃고 몰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국의 제일가는 고수이자 황실근위대장 려운압하는 이때로부터 오랜 방랑길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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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 : his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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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5-05-1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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