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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프로세스'와 88만원 세대

상상쟁이다람쥐 | 01-11 11:25 | 조회수 : 1,870 | 추천 : 5

PENTAX K-x | Aperture Priority | 28.00mm | ISO-200 | F3.5 | 1.0s | +0.70 EV | Centre Weighted Average | 2010-01-09 16:55:50

카메라 유저들 사이에선 요새 k-x가 대세다. 일명 '깜찍이'라고 불리우는 애칭에 걸맞게 현존하는 APS-C 센서 채용 DSLR 중에서는 가장 작고 가벼운 기종이다. 게다가 카메라는 무조건 검은색이라는 통념을 가볍게 씹어주며 100가지의 화려한 컬러로 등장한 k-x는 출시 전부터 카메라 시장을 술렁거리기 충분했다(아쉽게도 한국에서는 100가지 모델 중 4가지만 정식으로 수입된다.) 출시된지 6년도 더 된 내 카메라, 내 카메라는 펜탁스 최초의 DSLR인 *ist D다. 하루가 무색하게 나날히 발전하는 디지털 시장에서 6년이라는 세월은 잘 상상조차 가지않는 긴 시간임에 분명하다. 버벅거리는 AF, 지글거리는 노이즈,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LCD...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하지만 오늘부터는 그런 고민에서 해방이다. 이제는 펜탁스의 최신 기종 k-x가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예정이니.



펜탁스 공식 서포터즈로 선정되고 오늘은 발대식에 다녀왔다. k-x를 시작으로 앞으로 1년간 펜탁스의 다양한 제품들을 먼저 사용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짧지만 즐거웠던 서포터즈분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카메라를 꺼내어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눌러보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전 메이커를 통틀어 k-x에만 유일하게 들어있는 '크로스프로세스'라는 기능은 사실은 디지털이 아닌 필름시대의 전유물이다. 정확한 정의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필름을 현상 할 때 사용되는 약품등을 일부러 바꾸어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하여 본래의 색감이 아닌 다른 색감으로 현상시키는 것, 이게 바로 크로스프로세스다. 예를 들자면 슬라이드 필름 현상 약품으로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한다던지 하는 식이다. 꼭 직접 현상하지 않더라도 사진관 아저씨게 잘 말씀드리면 사진관에서 해주기도 하는데 어떤 색감이 될지는 말 그대로 랜덤.
디지털에서는 크로스프로세스라는 기능이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카메라의 모드를 크로스프로세스로 맞추어 놓으면 매번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색조, 채도, 콘트라스트, 화이트밸런스 등이 제멋대로 조합되어 재미있는 결과물이 리뷰창에 뜬다. 직접 써보기 전까지만 해도, 재미삼아 몇번 해보면 그만일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찍어보니 이게 참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오는 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며 찍었던 오늘의 사진 한장이다. 간발의 차로 놓쳐버린 지하철, 굳게 닫힌 스크린 도어와 두손에 가득 짐을 든 축 처진 어깨.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사람, 평행선같은 관계. 그걸 바라보는 나의 흔들린 시선. 우리 셋은 모두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지하철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에 설명을 달자니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것 같지만 그래도 노출을 길게주어 약간 흔들리게 한 의도가 반영된것 같아서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여기에서 재미있는건 사진의 색감. 마치 어느 병원의 희미한 수술실 불빛을 떠오르게 만드는 창백하고 기분나쁜 파란 색감은 내가 의도한게 아니라 카메라의 크로스프로세스 기능에 의한 '선택'의 결과다. 리사이즈외에는 따로 보정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의도했던 바를 강조하는데에 도움이 된 셈이다. 물론, 역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감으로 낭패에 빠뜨릴때도 가끔 있겠지만 말이다.
k-x의 크로스프로세스로 찍은 사진은 '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어떤 색감일지 알 수 없어서 리뷰창을 키고 다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것또한 관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혹자는 현대사회가 '관음증'의 사회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물론 관음을 즐기기도 한다. 남을 바라보는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내가 나를 관음한다. 내가 찍은 사진을 다시 내가 감상하고 재해석해보는 잔재미가 크로스프로세스에는 있었다. 88만원 세대에 대해 사실 잘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건 내가 바로 그 세대라는 사실. 내가 셔터를 누르면서도 어떤 사진이 찍힐지 모르는 불안함, 두려움. 하지만 그 불확실함을 즐기고 오히려 그렇게 얻어진 결과물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의 모습. 이렇게 찍힌 사진 한장 한장들이야 말로 우리네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이 시대의 초상은 아닐까. 어쩌면 별거 아닌 기계의 한가지 기능일지도 모르지만, 오늘 카메라를 만지던 내 모습에서 스스로 발견한 나의 또다른 모습에 숨겨두었던 정곡을 그대로 쿡 관통당한 느낌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난 계속 이 기능을 자주 사용할것 같다. 사진기는 그저 사진찍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가끔씩 사람의 눈보다 더 뛰어난 발군의 성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분명 사진은 감성을 담고, 시대를 담아낸다. 랜덤으로 찍혀지는 색감의 사진에 의지하는게 무슨 시대상이냐구. 그게 2010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흔들리고 불확실하고 나약한 모습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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