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스트랩은 저에게 약간 애증의 존재입니다. 넥스트랩으로 목이나 어께에 걸지 않고, 손에만 들고 있으면서도 흘리지 않는다는 신뢰성을 줌과 동시에 한편으로 핸드스트랩 하나 만으론 모든 상황에 대처하지 못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렌즈를 교환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잠시 딴 일을 위해 손이 필요하든 카메라는 넥스트랩을 써서 몸 어딘가 걸치든지 아니면 가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핸드스트랩은 어디까지나 촬영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상황에서만 유용한 것이죠.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소해준 건 픽디자인 캡쳐프로였습니다. 픽디자인 제품이든 아니면 비슷한 다른 제품이든, 적어도 손이 필요할 때 카메라를 가방에 넣거나 넥스트랩이 필요하지 않게 해줍니다. 가방이나 허리춤에 달린 캡쳐프로에다 카메라를 끼우면 되니깐요. 물론 렌즈교환 문제는 아직도 핸드스트랩 만으론 극복하기 힘듭니다만, 현재로썬 딱히 해결책이 없는 문제라 보고 있습니다.
캡쳐프로를 구입한 이후 넥스트랩을 제거하고 핸드스트랩 만으로 써보려는 시도를 해봤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건 마침 픽디자인 제품들을 쓰고 있으니, 픽디자인에서 나온 핸드스트랩인 '클러치'였죠. 클러치의 즉석 길이조절은 매우 유용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원터치로 풀었다 조였다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일단 핸드스트랩이 연결되는 지점들이 좋지 못했습니다. 위쪽은 스트랩링, 아래는 플레이트에 달린 앵커로 연결되게 되는데, 스트랩링 위치에 핸드스트랩이 놓이게 되자 바디가 작은 미러리스에서는 셔터버튼 접근성이 나빠지곤 했습니다. a7R II는 그래도 셔터버튼엔 방해가 되지 않았지만 상부의 Fn 버튼들은 이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래쪽이 앵커로 연결된다는 점 역시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재질이나 디자인은 좋았지만 손가락 각도가 안 나온다는 게 클러치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일자형 스트랩고리가 있는 DSLR이라면 클러치는 괜찮은 선택인 듯 하지만 미러리스에선 아니었습니다.
사실 핸드스트랩은 미러리스와 별로 상성이 좋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미러리스 바디들이 대체로 작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오밀조밀함 때문에 핸드스트랩이 손목, 손가락 각도를 제한해서 버튼이 닿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또 미러리스는 성인 남성 손에서 손가락 1,2개 정도 남는 그립 크기를 갖고 있습니다. 손 크기가 작아질 순 없으니, 핸드스트랩을 쓰게 되면 아래쪽이 바디 하부보다 더 튀어나오는 모양새가 됩니다. DSLR에선 바디 측면에 손을 묶어두는 역할만 한다면, 미러리스에서는 받쳐주는 역할까지도 겸하게 되고 결합방식에 따라 편치 않기도 합니다.
그립 사이즈의 문제야 바디가 작은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바디 상부의 조작 접근성은 반드시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픽디자인과 유사한 목적의 악세사리를 많이 만드는, 하지만 기구적으로는 철학이 꽤나 다른 스파이더 쪽 재품을 보게 됐습니다. 스파이더는 픽디자인과 경쟁위치에 있는 여러 제품을 내고 있는데, 그 구조나 결합방식은 꽤 차이를 보입니다. 픽디자인이 앵커 중심의 철저한 모듈식이라면, 스파이더는 그보다 좀 더 헤비듀티 느낌이 나는 기계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가령 스파이더 홀스터는 볼관절을 이용한다든가, 하는 식입니다.
각설하고, 스파이더 악세사리 라인업은 크게 스파이더, 스파이더라이트, 블랙위도우로 나뉘는데, 스파이더는 프로슈머 중심의 가장 비싸고 묵직한 라인업, 스파이더라이트는 스파이더의 제품군들을 좀 더 심플하고 가벼운 장비에 맞도록 경량화한 쪽, 블랙위도우는 플라스틱이나 패브릭 재질 사용을 늘려서 스파이더보다 저렴하면서 가벼운 라인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대충 블랙위도우가 스파이더의 염가형, 스파이더라이트는 경량제품용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핸드스트랩은 스파이더와 스파이더라이트로 나와있는데, 미러리스에 맞는 건 스파이더라이트입니다. 스파이더 쪽 제품군들은 DSLR에 적합합니다.
구성품을 보면 픽디자인보다는 확실히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앵커라는 한가지 인터페이스로 대부분 해결하려는 픽디자인과 달리, 스파이더는 와셔와 나사를 많이 이용합니다. 픽디자인 만큼은 아니라도 자사 패밀리군과 호환성을 가지기는 하는데, 어댑터들의 형태라든가 선택지가 있음과 동시에 성가시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전 스파이더 다른 제품군은 없기 때문에 스트랩 그 자체만으로 얘기하려 합니다.
스파이더라이트 핸드스트랩의 구성품. 바디의 스트랩링 스타일에 따라 4개의 어댑터가 제공되며, 2가지 사이즈의 나사와 육각렌치, 그리고 고무 및 금속제 와셔가 제공됩니다. 스트랩 어댑터는 위부터 A,B,C,D로 칭해지는데, 메뉴얼에는 어째선지 C가 나와있지 않습니다만 일자형 스트랩링을 가진 기종에 쓰는 녀석입니다.
각 어댑터와 기종별 안내. 기본적으로 호환을 보장하는 카메라 외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물론 메이커의 카메라 형태나 스트랩링 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고, 어댑터를 4개나 제공하기 때문에 왠만한 카메라라도 일단 장착은 됩니다. 다만 스트랩 각도 등이 이상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댑터 A와 B는 거의 똑같이 보이는데, 실제로 눈여겨봐도 스트랩링에 연결하는 부분의 주변 플라스틱이 큰가 얇은가 외에는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D는 파나소닉 기종용이고, C는 일자형 스트랩링을 가진 기종용입니다.
a7 II와 같은 섀시인 a7R II를 쓰고 있으므로 어댑터는 B를 택했습니다. 스트랩링에서 삼각링을 빼낸 뒤 나사로 직접 이렇게 연결합니다. 나사를 조이고 푸는데 육각렌치가 필수이기 때문에 즉석 탈착은 별로 용이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이쪽의 스트랩은 원터치로 풀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래쪽 풀려면 결국 육각렌치가 필요하다는 거지만;
바깥쪽 슬릿과 아래쪽 슬릿 중 a7 II는 아래쪽 슬릿을 쓰라고 되어있으므로 아래쪽으로 했습니다. 다양한 어댑터와 슬릿이 존재하는 이유는 스트랩링의 위치와 바디 모양에 따라 최적의 스트랩 각도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위쪽은 3버튼식으로 손으로 잠글 수 있습니다. 이론 상으론 길이조절에도 쓸 수 있지만 플라스틱 스트립이기 때문에 내구성 상 1,2개 홀만 끼우는 건 권하고 싶지 않군요.
아래쪽 부착은 썩 엘레강스하지 않습니다. 나사고정식인데 바디와 스트립 손상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 및 금속 와셔를 이용합니다. 그나마도 일자나사 홈이 없어서 동전으로 조이고 푸는 건 불가능합니다. 슬라이드를 해서 길이 조절도 가능하나, 제 손 크기에서는 L플레이트를 장착해 바디가 순정보다 약간 높아졌음에도 최소로 해야 쓸만한 정도였습니다.
순정 나사/와셔보다 더 나은 옵션은 도브테일 플레이트를 이용하는 겁니다. 보통 동전으로 풀 수 있거나 아니면 핸들이 달린 경우가 많아서 유사시 탈착이 용이합니다. 전 픽디자인 슬라이드 스트랩을 위해서 플레이트와 앵커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쪽으로 했습니다. 물론 스파이더 순정 플레이트들(홀스터 용 등)을 이용할 수도 있으며, 홀스터 용 볼 달린 나사도 쓸 수 있습니다.
어느 핸드스트랩이든, 핸드스트랩을 쓸 때의 문제점 중 하나는 배터리 커버가 가린다는 점입니다. 세로그립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바디 하부에 스트랩 고리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트로 연결하게 되는데, 스트랩이 바디 아래쪽을 반정도 덮는 형식이 되기 마련입니다. 픽디자인 클러치도 마찬가지고 나사를 쓰든 플레이트를 쓰든 스파이더라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따라 배터리 커버가 가리게 되는데, 스트랩의 유연성 덕분에 배터리 교체를 위해 풀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분명 방해가 되기는 합니다. 게다가 L플레이트가 없다면 더 배터리 구멍에 밀착되어 있을테니 번거로워질 겁니다.
핸드스트랩 장착 후 핸들링. 독특한 어댑터를 이용해 스트랩이 뒤쪽으로 쏠리도록 한 것이 버튼 조작감에서 큰 향상을 가져옵니다. 바디 측면으로 일직선으로 떨어지면 상부 Fn 버튼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분명히 발전이고, 얇아보이는 너비지만 파지에 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하부의 길이 조절용 스트립이 최소사이즈로 해놓으니 많이 남아서 걸리적거리긴 합니다. 여기저기 치이면서 구겨지거나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테이프로 바닥에 붙여놔야 할런지.
어댑터의 내구성은 약간 걱정되긴 합니다. 쉽게 깨지진 않는 약간 탄력있는 플라스틱이긴 하지만, 스트랩링을 지탱하는 게 나사 하나라는 게 좀 걱정입니다. 게다가 어댑터 위쪽에 넥스트랩까지 달아놨는데, 이로 인해서 나사가 변형되어 안 빠지거나 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뭐 스파이더 제품들 자체가 워낙 터프하게 만들어지니 이것도 내구성은 좋을 거 같지만 그래도 나사 자체가 스트랩링 통과하려다보니 워낙 가느다란 놈이라서 말이죠;
일단 이 제품 구입 전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사이즈'입니다. 저에게는 최소사이즈로 조절해서 간신히 피팅감이 있을 정도로, 성인 남성 평균손보다 작은 손이라고 하면 사지 않는 게 낫습니다. 참고로 제 손바닥은 엄지-검지 사이부터 새끼손가락 뿌리까지 8cm 정도입니다. 피팅되는 것도 L플레이트를 이용해서 바디 크기를 좀 키워서 이정도입니다. L플레이트가 없었다면 헐렁하게 놀았을 것이고, 그럼 한국인 손+순정 미러리스 바디라면 제대로 조여지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a7R II보다 큰 미러리스 바디는 후지, 파나소닉, 올림푸스의 플래그십 뿐이므로 그보다 작은 바디라면 한국인 손 크기로는 왠만해선 망한다는 얘깁니다.
결국 이 스트랩을 쓰려면 1) 평균 혹은 그 이상의 손크기를 가지고 있고 2) 미러리스 중 가장 큰 사이즈의 바디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운 좋게도 아주 간신히 턱걸이하긴 했는데, a9으로 가더라도 하프케이스나 플레이트로 바디 크기를 키우지 않으면 이 스트랩을 쓸 수가 없습니다. 타사 기종으로 간다고 치면 최소 X-T2나 E-M1 II, GH5 정도 크기 되는 놈이어야 쓸 수 있다는 얘기고요. E-M5나 X-T20, A6xxx 시리즈만 되도 한국인 손 크기로는 이 스트랩은 못 쓴다고 보시면 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손 크기와 바디 사이즈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장점
- 작은 미러리스 바디에도 상부 조작을 해치지 않음
- 여러 바디에 대응하는 어댑터
- 어댑터는 넥스트랩 등을 장착할 여유가 있음
단점
- 탈착이나 길이조절에 전용공구 필요
- 길이조절 후 남는 부분이 거추장스러움
- 어댑터와 플라스틱 스트립의 내구성 우려
- 손과 바디 크기가 일정 이상 되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