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일개 서드파티 렌즈 제조사에 불과해 보이던 시그마가 최근 수 년 사이 새로운 렌즈들을 출시하고, 이들 렌즈가 이전에 비해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된 스펙과 성능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시그마가 UFO를 줏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폐쇄성이 강한 카메라 시스템에 있어 서드파티(Third Party)는 원 제조사가 해 놓은 설계의 틀에 맞춰서 만들어야 하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기에 제품의 성능이 원 제조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거나 한 수 아래였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필자는 대략 십 년 전 충무로에서 시그마 렌즈를 썼던 제품촬영에서, 조리개 수치 F22에서 니콘의 동급렌즈(AFS 28-70 F2.8 ED)에 비해 부족했던 디테일과 샤프니스를 보고 '역시 싸구마'라는 자조 섞인 혼잣말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대략 십 년. 강산이 바뀐다는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땅을 기어 다니던 한 살배기도 초등학교 삼학년이 되듯, 이제는 옛날의 그들이 아니다. 거의 모든 카메라 제조사의 마운트에 맞는, 그것도 원 제조사의 그것과 동등하거나 심지어 그 이상인 렌즈들을 여럿 거느린.. 과거에 동네형들 가방이나 나르던 그 친구가 아니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 시그마의 자회사인 '포베온'이 있다. 모든 이들이 '베이어패턴'형식의 센서를 만들고 이 방식의 근본적 문제점과 한계(Fake Color & Moire)를 극복하기 위해 힘쓰고 있을 때, 색다른 발상을 해낸다. '필름이 층마다 다른 원색이 감광되도록 감광층을 겹쳐 올렸던 방식을 이미지센서에도 적용해 보자' 이것이 바로 '포배온 X3'이다. 이 센서는 각각의 색을 받아들이는 포토다이오드 층을 석장 겹쳐 필름과 동일한 방식으로 빛을 받아들여 '보간법'에 의존하는 기존의 베이어 패턴 이미지센서에 비해 한결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색상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중대한 문제에 부딛히게 되는데, 포토다이오드 적층에 의해 실제 픽셀수가 기존 베이어패턴센서의 세배인 포베온 X3의 원시데이터는 순식간에 처리해 내기에 매우 버거운 덩치가 아닐 수 없다. 산술적으로도 동일한 속도의 프로세서에서 3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던가.. 여기에서 한가지 함정.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많을 때 더 빠른 프로세서와 저장매체를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그마 뿐 아닌 대부분의 카메라 제조사가 처리속도를 높이는 경쟁을 같은 보폭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은 시그마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미지 프로세서를 듀얼 혹은 트리플코어로 구성하여 처리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전문가용 카메라시장에서 이미 상식이나 다름이 없다. 또 한편, 더 빠르고 더 많은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채용하려면 그만큼 제조원가의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간의 성능차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저렴한 제품이 선택되는, 흔히 말하는 가성비가 깡패인 것은 흔한 일 아니던가.. 심지어 다른 거대 제조사들은 더 많은 물량을 제조/유통함으로 인해 부품단가의 이득 또한 지니고 있다. 결국 '포베온 X3'는 마니악한 유저들을 중심으로 한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시장에서 완전히 따돌림 당하지 않는 것은 제품의 매력과 충성도를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태생적인 장점과 불리함을 함께 짊어진 시그마는 두 가지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첫 번째는 처리속도, 두 번째는 부족한 대중성. 마치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하는 아들을 둔 엄마의 심정으로 신제품 개발에 노력해온 결과, DP1에 이르러 '사용하기는 느리고 불편함이 있지만 결과물은 꽤 괜찮은 카메라' 혹은 ‘진중하게 사진을 추구하기 위한 카메라’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반 석차 하위권에 있던 아이가 전국석차 중상위권까지 뛰어 오른 것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한편, 시대의 변화와 함께 컨슈머 시장은 DSLR을 지나 '미러리스'로 중심이 옮겨가는 중이다. 이미 마이크로포서즈 진영은 한참 앞서 나가는 중이고, 기존 DSLR의 거인들도 이 새로운 헤게모니에 발이라도 담가보고자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아직은 약간씩 부족한 모습들이다. 이때 시그마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자사의 간판인 ‘렌즈교환식 DSLR 카메라’였던 SD시리즈 신제품을 '렌즈교환식 미러리스'로 내놓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이번에 리뷰하게 된 sd Quattro이다
Photo by Adios (LF Studio)
2. 외관상의 특징
사실 이 카메라의 외관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부분이 바로 ‘매우 돌출된 렌즈 마운트’일 것이다. 그렇잖아도 전통적이지 않은 디자인이 이 돌출된 마운트를 통해 가일층 낯설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하는데, 필자는 되려 이 형태를 띄게 된 것을 시그마의 굳초이스이자 동시에 자충수라 평하고 싶다. 시그마는 자사의 렌즈라인에 모두 SD시리즈 카메라를 위한 SA마운트를 포함하고 있다. SA마운트는 원래 SLR카메라의 플랜지백(렌즈마운트면 부터 상이 맺히는 지점-촬상면까지의 거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러를 들어낸다고 해도 무조건 렌즈 마운트부터 센서까지 44mm의 공간을 띄워야 하는 것이다. 만약 시그마가 디자인을 위해 이 플랜지백을 줄이려 했다면, 지금까지 나온 SA마운트 렌즈군 전체를 포기하고 새로운 렌즈군을 설계/생산/유통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 마이너한 시장을 점하고 있는 입장에서 결코 선택하기 어려운 선택이 아닐까 싶다. 아예 새로운 시장을 설정하고 전력을 투구하여 성공을 이루어낸 올림푸스의 선례를 생각하면 자충수라 볼 수 있지만,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자사의 렌즈군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잇점을 얻는 것은 굳초이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sd Quattro의 디자인은 호불호가 강하게 나뉜다. 이외에 이 카메라의 UI/UX에 대한 부분들은 다른 리뷰를 통해 이미 꽤 알려져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여 배포있게 건너뛰기로 한다.
카메라의 스팩이 궁금하신분은 아래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시기 바란다.
www.sigma-global.com/kr/cam...
3. 정물촬영
sd Quattro가 고화질 카메라를 표방하고 있기에 미술작품의 섬세한 컬러를 얼마나 잘 재현해 내는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때마침 금속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장정후작가의 작품 촬영에 카메라를 동원했다. 하지만, 8월 2일 전시를 시작하기 전에 작품의 사진이 공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작가의 뜻에 의해 리뷰를 두 편으로 나누고 내용의 순서를 바꾸기 위해 부랴부랴 정물을 찍기로 하였다. 여름은 제품사진에 있어서도 비수기인지라 실제 촬영에 카메라를 동원하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촬영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지고 스튜디오에 있는 정물 두어가지를 촬영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습관 중 하나가 촬영하며 조명헤드를 하나씩 늘리면서 종국엔 호리즌트 앞에 조명을 주렁주렁 늘어놓는 점이다. 보통 그림을 촬영하는 업자들은 1:1 프론트 미들의 ‘뻥조명’으로 그림을 찍지만 필자는 최소 3라이트 버터플라이-트라이앵글부터 시작해서 피사체에 따라 조명헤드가 네다섯 개씩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잖아도 광고사진에 비해 낮은 단가에 단순하고 쉽게 매듭지을 수 있는 촬영을 굳이 어렵게 한다며 같이 일하는 실장님께 군소리를 종종 듣지만 어쩌랴. 기왕 이런 기회에 조명 쓰는 기술 자랑도 하고 ‘싸고 잘 찍어주는 인상’도 심어볼 겸.. 간만에 심지 있는 조명으로 세팅해 보기로 한다. 심플하게 원라이트로 할까 하다가 림라이트 영역을 강조하고 역광의 그림자를 상쇄시키기 위해 헤드 하나를 더 추가. 검정 배경지에 빛이 너무 많이 묻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메인 조명기로 쓰고 있는 스피도트론은 임병호실장님께 경도되어 쓰는 것이 아니라.. 다만 돈이 없고 중국산 저가형은 쓸 수 없다는 나름의 타협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보통 주광을 스피도트론으로 셋업하고 보조광을 보웬스나 오로라를 써서 마무리 짓거나 보웬스-오로라를 섞어서 플랫하게 매듭짓기도 한다.
촬영은 필자가 스튜디오에서 쓰고 있는 카메라(5DMk2, EF28-70L)와 sd Quattro를 같은 환경에서 촬영한 후 결과물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09년 출시된 카메라와 2016년 출시된 카메라를 비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공격은 필자에게 신형카메라 한대 사준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계좌번호 보내드리기로... 1:1 절대비교를 한다기 보다는 실제로 촬영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 환경에서 sd Quattro의 활용성과 그 결과물을 비교해 보기 위한 대조군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 돈 많이 벌어서 H5D나 X1D한대 사면… 아니, 브론컬러 스코로.. 아니.. 꿈에서도 꿈꿔보는 BRIESE를 한세트... 아니다.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기로 하자...
어라? 사진에 화질 외에 다른 부분을 포기하다 싶은 ‘포베온 X3 콰트로 센서’의 결과물이라고 보기엔 뭐랄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일까? 기대 이하의 결과물에 30초간 실망했던 필자가 시그마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고 그 데이터를 심도있게 만져본 것은 거의 처음 아니던가. 생각해보자. 본 리뷰의 처음에 언급하듯 일반적인 베이어패턴 방식에 비해 ‘포베온 X3 Quattro’의 원시데이터는 3배, 실제 화소 수도 3배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네거티브 필름과 포지티브 필름을 함께 써본 사람이라면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증감/감감’에 빗대어 설명해보자. 일반적으로 네거티브는 포지티브에 비해 넓은 증감/감감 범위 (증감 2스텝 이상, 감감 1스텝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팅팅한 결과물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sd Quattro의 RAW파일 용량은 50MB, 결과물의 유효 화소수가 더 많은 5DMk2에 비해 두배 이상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한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대중적인 MP3로 음악을 들을 때 192kbps와 384kbps는 그 차이를 인간의 귀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음악을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편집에서 발생하는 열화’를 피하기 위해 더 용량이 많은 쪽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와서, sd Quattro의 RAW데이터는 후반작업에서 더 많은 자유를 사진가에게 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어진 데이터를 유용하게 활용하여 좀 더 많은 디테일과 샤프니스를 뽑아내 보도록 하자.
필자가 5DMk2를 쓰기 시작한 뒤로 경쟁자들이 쓰는 최신의 장비에 대항하기 위해 몇 가지 프로세싱을 습관처럼 넣곤 하는 것이 있다. 라이트룸에서 ‘부분대비’를 약간 올리고 렌즈프로필 필수로 지정하고 샤픈도 약간 먹인다. 이것은 오래전 스펙의 카메라가 가진 성능을 어떻게 하든 최대한 쥐어짜내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아닐 수 없다. sd Quattro의 여유 넘치는 결과물을 보며 그나마 이 노력도 이제 슬슬 한계인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두 장의 사진을 1:1로 비교하고 있자니 sd Quattro가 가진 후보정의 넓은 폭을 실감할 수 있다. 라이트룸과 SPP의 보정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5DMk2에서 비슷한 느낌으로 보정을 가하기엔 데이터의 관용도가 많이 부족하여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결과물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 뱀다리. sd Quattro는 1.5x 크롭이고 30mm렌즈, 5DMk2는 풀프레임 50mm영역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같은 화각에서 심도의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5DMk2의 결과물, 체스 말의 제일 앞줄에 있는 킹/퀸의 머리에 초점이 나간 것은 최소조리개가 F16까지인 시그마 30mm1.4를 위해 오두막이 희생한거라고 해두자.
(sd Quattro 촬영직후와 프로세싱완료의 1:1 비교 스크린샷. 클릭하시면 1:1 사이즈로 보실 수 있다.)
(5DMk2 촬영직후와 프로세싱완료의 1:1 비교 스크린샷. 클릭하시면 1:1 사이즈로 보실 수 있다.)
이쯤되면 할말이 없다. 후반작업의 똘레랑스는 sd Quattro의 압승이라고 말할 수 밖에..
그렇다고 전통의 명가 캐논이 이렇게 허무하게 패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주작을 해서라도 이기게 하… 아니라, 본 리뷰의 다음 편에서 회화촬영 결과물을 통해 설욕을 할 수 있는가.. 지켜보도록 하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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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7-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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