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1.1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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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은 우리 자신은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하는 거울이다. 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의 눈에 비친 한국의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성숙함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미숙함이다. 그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한국 민주주의에선 국민이 분노한 신(神)이다'에서 민심을 법 위에 두는 것은 법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에서 살던 사람들에겐 낯선 것이라 했다. 집단지성과 집단광기는 한 끗 차이임을 지적한 말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군중의 감정이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강력한 야수로 돌변해 법치를 붕괴시킨다. 한국인은 이를 '민심(public sentiment)'이라고 부른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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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 /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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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끄는 용어가 한국인들의 '민심'을 'public sentiment'로 표현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그렇게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백성의 마음'과 '공중 또는 대중의 감정'은 같은 걸까? 만약 둘을 같은 것으로 보면, 민심은 천심, 곧 백성이 하늘이라는 유교의 민본사상을 모르는 거다. 작년 말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가 '군주민수(君舟民水)'다.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과 같아서,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심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김수영은 시 '풀'에서 표현했다. 풀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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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숨은 신'인가, '분노의 신'인가? 왕조시대 왕은 천명의 대변자이기에 왕에 대한 반란은 역적으로 처단됐다. 왕이 곧 국가였던 시대다. 이런 왕조국가에서는 왕의 절대 권력을 통제하고 왕이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각인시킬 목적으로 민심은 천심이란 이념을 고취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왕도 국가의 반역자로 단죄될 수 있는 법치주의가 확립된 근대국가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민 주국가에서는 통치자든 국민이든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 법치를 확립한 민주국가에서 민심은 여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마이클 브린의 지적은 한편으로는 유교에 뿌리를 둔 한국의 정치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곧 운동으로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체제로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라는 충고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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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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