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혼자 술 마시다가 예전부터 쓰고 싶던 잡담을 씁니다.
전 사실 사진에 주력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2003년 겨울에 익서스 400을 산 것이 첫 디카였지만 이때는 그냥 일상을 담는 기기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고서는 거의 아이만 찍었었죠. 2003년 봄에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호주로 갔는데 아내가 자동 필카로 열심히 찍어도 전 '그 순간을 즐겨야지 사진만 찍으면 순간을 놓치는 거 아니냐'고 잔소리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와서는 후회하지만...
예전에는 다른 취미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음악이라든지 책이라든지 칵테일이라든지 하는 것에 열정을 쏟았었죠. 생각해 보면 주변에 사진 취미의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음악 동아리의 친구와 후배들은 사진 수업도 듣고 직접 흑백 현상까지 하는 대단한 사진 애호가들이었습니다. 훌륭한 사진을 보여줘도 전 시큰둥할 따름이었죠. 그저 돈 많이 들어가는 취미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중학교 때 음악을 같이 듣고 하던 단짝 친구를 10여 년 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도 사진을 업으로 삼고 싶은 희망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결혼식 때도 와서 사진을 찍어 주었죠. 집에 도둑이 들어 비싼 장비들을 다 훔쳐 갔다지만...
그럼에도 꿈쩍 안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사진에 취미가 붙었으니 참 묘합니다. 아마도 결혼기념일 선물로 신혼여행 때 찍은 필름 사진을 디카로 다시 찍어 보정하고 음악을 넣어 슬라이드 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느낌을 얻은 탓인 듯하네요. 그리고 파나소닉 TZ3를 새로 사면서 좋은 사진기 샀으니 좋은 사진 찍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가 z1085 사고 팝코넷에 가입하며 사진 올리고 대화하는 재미에 푹 빠진 듯합니다.
때로 제가 올린 사진으로 과분하기 짝이 없는 칭찬을 듣는 때도 있는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누드 사진 보는 재미로 구입한 사진 책과 사진 잡지를 읽은 것이 그래도 어느 정도 저에게 자양분이 된 듯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진 관련 책을 꽤 많이 봤었군요. 오로지 누드 사진 보려고... 뭐 만레이니 카파니 하는 작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으니...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전 어느 정도까지만 오르고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너그럽고 다정한 팝코넷의 분위기 덕에 신나서 사진을 올리지 다른 곳 같으면 국물도 없지요...
사실 2007년 겨울까지는 음악을 더 좋아했었는데 목디스크와 아이 때문에 음악에서 멀어진 뒤 사진에 열중하게 되었네요. 아내는 상대적으로 더 좋아합니다. 사진에 취미를 가진 뒤부터는 밖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니까요. 그러고 보면 아내를 참 잘 만났습니다. 취미 활동을 하도 하다 보니 취미로 돈을 좀 버는 일이 있는데 그 돈은 무조건 저 하고 싶은 대로 쓰라고 줍니다. 제가 아무리 거절하고 옷이나 가방 같은 거 사라고 해도 완고하지요. 덕분에 싼 것이라도 음악이든 사진이든 장비를 살 수 있었죠.
참 삶이란 것이 묘합니다. 이젠 틈만 나면 사진 관련 책만 읽고 아이 재우면서 사진 생각만 하니. 사실 전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고 그림 또는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나 색약이라 꿈을 포기했었거든요. 그래서 미술을 일부러 외면했었습니다. 대신 누나가 화가가 되었지요. 집안에 화가가 있는 분은 잘 아실 겁니다. 화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이하 생략...
오늘은 캐논 쩜팔이를 구입했습니다. 참 마음이 들뜨고 좋네요. 아마 제 성격상 비싼 렌즈는 절대 구입 안 하겠지만 기본 번들만으로 아이처럼 좋아하며 맑은 날을 기대하겠지요. 만약 팝코넷이 없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요. 아니, 코닥동이 없었다면 이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40대지만 더 나이를 먹어도 계속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타는 못 치더라도 사진은 찍을 수 있겠죠. 예전에는 만약 손가락을 잃거나 해서 기타를 못 치면 자살하겠다고 했었지만 손이 저려서 기타 치기 어려운 지금은 사진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됐습니다. 뭐 절대로 고수가 되진 못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아이들과 아내 사진이라도 멋지게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늘 컴컴한 방구석에 처박혀 있길 좋아하던 제가 맑은 날을 그리워하고 햇빛 아래 걸어다니기를 좋아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카메라를 보란 듯이 손에 들고 다니는 일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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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eli
다들 절절한 사연들이 있으시군요. 사진 말고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끔은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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