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낚시꾼들의 네이버격인 월척(www.wolchuck.co.kr)에 올린 조행기입니다.
* 조행기(釣行記)란 말 그대로 '낚시를 다녀온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 낚시를 모르시는 이 곳 친구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용어나 표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굳이 주(註)를 달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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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南島)에게 배우다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봉암지 2009.12.03 - 12.13)
낚시에 '실력'이라는 게 있을까. 아마도, 낚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게 어딨냐고, 그거 운이 따라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게다. 그러나, 낚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묵묵부답 요지부동인 찌를 바라보며 하룻밤 꼬박 새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말할 수 있을 거다. 실력이 없으면 근사한 녀석을 결코 만날 수 없다고. 나 역시 낚시꾼이기에, 내 걸 수 있는 모든 것을 걸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틀림없이, 낚시에는 실력이 있다. 조력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글자 그대로의 실력이.
낚시에도 실력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은, 꾼과 다른 꾼 사이의 실력차도 인정한다는 얘기다. 나는, 그 실력차를 그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또 절감한다. 나에겐, 내가 아는 이 세상 그 어떤 낚시꾼보다 실력이 뛰어난 물마루라는 조우(釣友)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녀석이 낚시 하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으면 절로 '아, 나는 정말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친구에 대해서라면, 이전에 내가 이 곳에 올린 두 편의 조행기(<5짜보다 근사한 놈 낚아 보셨습니까> 혹은 <잠들지 않는 남도>)를 보시면 되겠다. 내가 과문한 탓이 크겠지만, 하여튼 이 녀석은 내가 본 낚시꾼 중에는 단연 최고다. 그래서 감히, 실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친구가 대물낚시라는 신종마약을 나에게 전파한 것이 올해로 4년째. 그 후로 매년 한 번 씩, 꼭 계획한 것은 아닌데 이 친구와 일정을 맞춰서 장박낚시를 간다. 충남 보령의 영보리지에서 9박10일 동안 찌올림 한 번 못 보고 꽝을 치기도 했엇고, 전남 신안의 도초도에서 칼바람을 맞아가며 5박 6일간 사투를 벌이기도 했었고, 이 친구가 처음으로 그 문을 연 충남 광천의 천북지에서는 릴레이로 12일간 장박을 하기도 했었다. 지난 4년 간의 여름휴가는 당연히 어디론가의 낚시여행이었고. 올해는, 그 친구도 나도 물가에 자주 나서지 못 했었는데, 그 병이 어디 가나, 2009년을 채 한 달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의기투합, 분연히 남도출정을 감행하였다.
생애 두번째 남도출정. 목적지는 남녘 진도에서도 그 남쪽 끝에 있다는 봉암지.
전날 저녁에 출발, 목포에서 하루 유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진도대교를 건넜다.
"아따, 먼 길 오셨소잉. 그라요. 여그가 바로 그 진도지라~"
내륙은 이미 겨울이 깊었건만, 남도는 이제야 늦가을..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드디어 봉암지가 저 멀리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벅찬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포인트 탐사에 나선다. 장대가 필요한 중류연안의 뗏장밭.
삭은 부들과 독립뗏장군(群)이 어우러진 포인트. 대를 드리우려면 만만치 않은 작업일 터.
아무리 남도라지만, 아무리 진도라지만, 그래도 12월인데 이 물색 좀 보소!
봉암지 최고의 명당이라는 붉은언덕 앞 뗏장밭. 하룻밤에 4짜만 세 마리가 솟았다는 그 자리.
무너미 역시 멋져 보였지만 상류 연안의 호황 탓에 열흘 내내 무주공산 신세를 면치 못 했다.
이런 포인트에서라면 정말이지 뭐가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데...
이것저것 꼼꼼히 준비를 하여 그 날 저녁에 천안을 출발, 밤늦게 도착한 목포에서 하루를 묵고 새벽같이 진도대교를 건넜다. 그렇게 가슴 설레며 도착한 봉암지는, 이미 호황소식을 듣고 자리한 많은 조사님들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물마루나 나나, 아무리 낚시가 잘 된다해도 다른 조사님들로 붐비는 낚시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러나 이번엔 어쩔 수가 없었다. 봉암지 하나 바라보고 워낙 먼 길을 달려간 터였고, 때가 때이니만큼 다른 곳에서의 낚시는 모험일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차선책으로, 붐비는 붉은 언덕쪽 연안이 아닌 건너편 연안에 대를 펴기로 했다. 서로 포인트를 잡고 힘겹게 작업을 마친 후 대를 던져 넣고 첫날밤을 맞았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날 저녁부터 매서운 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초속7m였다는데, 낚시텐트의 한쪽 면이 얼굴에 닿을 정도의 바람이었다. 낚시불가. 진도의 텃세였을까. 이 바람은 꼬박 이틀을 불고 셋째날 밤 10시반이 되어서야 드디어 수그러 들었다. 그런데 그 바람이 부는 동안 물마루는, 다시 건너편 연안으로 자리를 옮기고 새 포인트의 작업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바람이 자던 그 날 밤, 그 자리에서 월척 한 수 포함, 총 다섯수의 붕어를 낚아냈다. 서 있기도 힘든 바람 속에서 부지런을 떤 대가였을 것이다. 바람을 피해 게으름을 피우던 나는, 당연히 아무런 조과도 거두지 못 했고. 핑계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대를 편 연안 쪽의 모든 조사님들의 성적은 처참했다. 단 한 마리의 붕어도 비치지 않았던 것. 붕어는, 붉은 언덕 쪽 연안으로 붙어있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물마루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 나도 결국 건너편 연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인회관 쪽 연안에서 사흘을 꽝 치고 옮긴 두번째 자리. 붉은 언덕 언저리의 갈대밭이다.
갈대밭 너머로 마리수 4짜에 최대 49cm 붕어가 낚였다는 예의 그 '명당'이 보인다.
'49cm가 나왔다는 자리와 겨우 200m 거리잖아' 언감생심, 초보꾼의 가슴이 뛴다.
만수면적 25만평이라는 대형대류지 봉암지에서 소류지가 근무를 선다.
나는 사실, 일단 대를 펴 놓으면 좀처럼 안 움직인다. 가벼워 보여서, 아니면 고기 욕심 때문에 부화뇌동 하는 것이 보기 흉해서, 뭐 여러가지 핑계를 대라면 댈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엇보다 귀찮아서다. 그 많은 짐을 다시 싸는 것도 일인데, 그걸 짊어지고 가서, 힘겹게 자리를 만들어서, 그 살림을 다시 풀어 놓을 일을 생각하면 정말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독하게 맘을 먹기로 했다. 물마루만큼은 아니더라도, 해 볼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여 자리를 옮기고, 거칠게 작업이 되어 있던 갈대밭 포인트를 귀가 빨개지도록 열심히 매조지했다. 총 다섯개의 구멍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무엇보다 바닥작업이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들어뽕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포인트였던 듯 싶엇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고 포인트를 가다듬고 나니 한나절이 다 갔다. 우여곡절 끝에 자리이동을 마치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를 던져 놓고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데 (수심이 40cm에서 80cm 사이였고 물색도 매우 맑아서 밤낚시가 아니면 조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번엔 비와 우박을 동반한 초속9m의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흔히 일기예보에서 들려주는 풍속(風速)을 그냥 숫자로만 흘려 들었었는데, 이번에 진도에서 그 바람을 직접 맞고서 그 숫자의 의미를 몸으로 배웠다. 단언컨대, 바람이 초속9m가 넘으면 그 때부터 그것은 '자연재해'다. 낚시는 고사하고, 사람이 야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불가능해진다. 그런 바람이, 다시 꼬박 하루반나절을 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리를 옮긴 첫 날, 그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직전에, 드디어 진도에서의 첫 붕어를 만날 수 있었다. 참붕어를 먹고 올라 온 근사한 준척급의 진도붕어. 정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물마루도 제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그러나 그 날의 낚시는 거기서 끝. 미* 듯 불어대는 남도의 강풍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텐트 안에 숨어서 바람이 자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물마루와 다섯밤을 기약하고 온 진도행. 그러나 풍장군의 심술 탓에 단 하루도 제대로 낚시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은 진도에서의 마지막밤, 거짓말처럼 바람이 자고, 정말 다른 세상처럼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딱 그 한 밤이었다. 그 날 밤, 마루는 일곱치 한 수 하는데 그쳤고, 나는 두번째 붕어를 만날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남도의 월척이었다.
다음날, 나는 물마루를 먼저 올려보내고 진도에 혼자 남기로 했다. 물마루는 크게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대물낚시에서 내가 물마루 없이 홀로 낚시를 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물마루는 혼자 간 적이 많지만 나는 혼자 간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대물낚시를 하러 물가에 나섰을 땐, 늘 의지하고 도움받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었다. 바로 내 친구 물마루가. 나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물마루 역시 나를 챙기고 보살핀다는 마음으로 같이 낚시를 다녔을 터인데, 이제 처음으로 나 혼자 물가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머나먼 남도의 끝자락에. 물마루는, 그렇게 혼자 남는 내가 걱정도 되고 애틋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자신의 채비며 장비며 이것저것 다 챙겨서 내게 다 넘겨 주고는,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해라,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잔소리를 하고 또 하더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어서 먼저 올라갔다. 그렇게 난, 진도에 혼자 남았다.
주인어른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추수가 끝난 근처의 논 위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논주인께서도 틀림없이 보셨을텐데 열흘 내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고맙습니다.
조우(釣友) 물마루가 선물한 이 온수매트 덕분에 열흘 내내 땀을 흘리며 잤다.
베이스 캠프 옆에 설치한 빨래줄. 그러나 대부분 날이 흐려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 했다.
뒤꽂이 네 개와 큼직한 마트 비닐봉지 세 개면 편하고 완벽한 분리수거가 가능해진다.
이번 조행의 병참기지 심동지. 삼각망 하나만 담가 놓으면 참붕어 걱정 끝. 봉암지와 5분거리.
심동지 가는 길에서 만나지는 동석산의 근사한 풍광은 실로 즐거운 원 플러스 원.
"아따 그 냥반, 딴소릴랑 그만 점 허고 인자 낚시야그 좀 해 보드랑께"
홀로 남은 진도의 첫날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물마루가 좋아하는 드링크의 빈 병만 봐도 가슴 한 구석에 서늘하니 찬 바람이 불었다. 그런 나를 시험이라도 하려고 했는지, 그 날 밤 내륙지방에서는 한파주의보가 발령되고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진도의 수은주가 영하2도까지 내려갔다. 손뜰물이 꽁꽁 얼었고, 찌들도 일제히 얼어붙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외롭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그래서 서글픈 마음까지도 드는 그런 밤이었다.
다음날, 기온은 다시 영상을 되찾았지만, 갑자기 떨어진 수온탓이었는지 그 날 밤 역시 입질은 없었다. 홀로 남아, 이틀을 추위에 떨며 꽝을 치고 나니 나는 그만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이제 봉암지도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닌가. 수온에 비해서 수심이 너무 얕진 않은가. 물색이 너무 맑진 않은가. 동절기라 입질이 예민할텐데 채비나 모든 것이 너무 투박한 것은 아닐까. 나 지금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물마루가 언젠가 했던 말이 떠 올랐다.
"물가에 나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지 않고서 꽝 쳤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다 해 보고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 보고서 꽝을 쳤을 때, 그 때야 비로소 꽝쳤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래. 내가 언제 혼신의 힘을 다 해서 낚시를 해 본 적 있었던가. 어떻게든 편해보려고, 어떻게든 덜 힘들어 보려고 꾀부터 부리지 않았던가. 욕심만 그득했지, 그 욕심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 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나도 한 번 해 보자. 내 비록 실력은 물마루보다 한참 뒤지지만, 보잘 것 없는 실력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 보자. 있는 힘껏,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만이라도 일단 한 번 해 보자.
수초작업부터 모두 다시 했다. 바닥을 한 번 더 깔끔히 긁어내고, 포인트 두 개는 찌를 수초에 조금 더 가깝게 붙일 수 있게 새로 작업했다. 두 개의 찌를 부들밭에 30cm 더 붙이기 위해서 수초낫으로 세 시간이 넘는 작업을 해야했다. 나보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30-40분만에 뚝딱 해 낼 수 있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아니니까, 실력이 한참 모자라니까, 그렇게 고생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찌맞춤도 모두 새로 했다. 눈곱만큼씩 봉돌을 잘라가면서, 편납까지 감아가면서. 그렇게 새롭게 재정비를 하고 나니 어느덧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정성껏 채비를 던져 넣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밤, 황홀 찌올림과 함께 준척급 붕어 두 수를 만날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고수들이라면 일주일 넘게 낚시해서 고작 준척 두 마리 밖에 못 했냐며 비웃을 수도 있겠다. 나도 안다. 나도 인정한다. 내가 실력이 모자라서 그것밖에 안 되는 것임을. 그러나 그 날 내 품에 안긴 그 붕어 두 마리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을 내게 안겨준, 그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도 기특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아, 정말 그 기분은, 나같은 '하수'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다음날, 내가 홀로 남은 4일째 되던 그날밤, 무려 여덟번의 찌올림이 있었고 여섯 마리의 진도붕어가 내 품에 안겼다.그 중 두 수가 월척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준척이었다. 아, 그 날의 찌올림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깜빡깜빡 예신을 주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이내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찌를 끝까지 뽑아올리는, 황홀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한 찌불들의 그 아득한 승천(昇天)이라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한참 모자란 실력이나마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 끝에 펼쳐지는 찌불들의 군무(群舞) 앞에서 난 책에서나 보던 '황홀경'이란 단어를 체감했다. 천사가 내게 와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샌 그날밤과 천국에서의 하룻밤을 바꾸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오면 난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 백번이면 백번, 천번이면 천번 다, 난 그날밤의 찌 앞에 기필코 앉고야 말 테니까. 그 황홀한 찌올림 앞에서 또 넋을 잃고야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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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솔직히 고백하고 시작해야겠다. '붕어만 잡는 게 아니야', 폼 잔뜩 재며 시작은 했지만, 솔직히 붕어 한 마리도 없는 곳에 가서 대를 드리우라면 나, 그렇게는 못 하겠다. 곧은 바늘을 물에 담그고 세월을 낚고, 시대를 낚았다는 태공망의 그 경지는, 낚시꾼인 내가 볼 때 순 거짓말이다. 그를 만나면 물어볼테다.
'솔직히, 죽을 맛이었죠?'
그래, 내가 한낱 조졸(釣卒)에 불과한 까닭이겠다. 그러나, 이거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강태공의 지고지순한 그 경지를 '먼 역사 속 새빨간 거짓말'로 닦아세울 수 있으니까. 그래야 '근사한 녀석을 만나겠다'는 그 마음을 '욕심'이라는 말 대신, '기대' 혹은 '설렘' 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말로 바꿔 부를 수 있으니까.
낚시꾼들은 '기대감' 하나로 물가에 나선다. 늘 평화로울 수 없는 길이다. 때로는 몸을 가눌 수 없는 강풍을 뚫고, 눈을 뜰 수 없는 거센 비를 맞고, 손뜰물에 살얼음이 잡히는 매서운 추위를 무릅써야 한다. 그런데도, 그 무거운 낚시짐들을 바리바리 이고 지고, 기어이 또 물가로 나서서 대를 펴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나서서, 지극정성으로 한 밤을 지새우고도 입질 한 번 못 보고 돌아서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또 간다. 또 나선다. 도대체 왜.
"아니 맨날 꽝 치면서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또 나서?"
그가 낚시꾼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이 질문에 한해서만큼은 확실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다 똑같진 않을 거다. 어쩌면 모두 다 조금씩 다른 답을 들려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장담커니와, 낚시꾼이라면 이 질문에 대비한 답을 - 어쩌면 핑계겠는데 - 하나씩 '꼭'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그 대답이, 그 핑계가, 바로 그들이 낚시를 하는 진짜 이유다. 누군가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난 그에게 '찌맛'이라고 대답할 테다. 맞다. 난, 이 '찌맛'때문에 낚시를 한다.
'찌'는, 낚시소품 중의 하나다. 낚시줄에 연결된 채 물 위에 떠서, 물 속의 상황을 물 밖의 낚시꾼에게 '고해바치는', 그야말로 붕어에겐 괘씸하고 꾼에게는 기특한 소품인데, 이 '찌'에 내가 낚시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찌'가, 솟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 잔잔한 수면을 뚫고 천천히 상승(上昇)하기 때문이다. 그 숨 막히는 상승, 그 신비로운 승천(昇天)을 -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찌는, 붕어가 미끼를 취할 때 솟는다. 내가 오매불망 바라던 나의 고운 그 님이, 나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신호다. 아, 천하의 목석인들 그 가슴이 뛰지 않으랴! 떨리지 않으랴!
게다가 그 상승은, 빠르지 않다. 이 찌올림은 느리면 느릴수록 상급으로 친다. 특히 밤낚시에서의 찌올림은, 찌불의 반영(反影 - 야광찌의 불빛은 수면 위에 그대로 비치기 때문에 두 개로 보인다. 하나는 수면 위에, 하나는 수면 바로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으로 인해 더없이 극적(劇的)이다.
태고적처럼 고요한, 내가 깨지 않는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정지(靜止)의 상태. 그러다 문득, 밤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낸 유리면 같은 수면 위, 저어 멀리 세워 둔 찌 하나에 꿈뻑-꿈뻑- 예신(豫信)이 온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세상에서, 오직 찌불 하나가 의뭉스럽게 움직일 채비를 갖추는 바로 그 순간,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타닥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깨어난다. 침이 꿀걱 넘어가는데 그 소리가 건너편 산자락까지 닿을 것처럼 크다. 조심스레,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낚싯대 손잡이로 손을 가져간다. 자아, 솟아라, 솟아라. 멋지게 한 번 솟아보거라.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숨이 콱콱 막힌다.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 녀석이 그냥 가면 어쩌지. 혹여 수상한 낌새라도 느끼고 고개를 돌리면 어쩌나. 아니야, 난 녀석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는걸.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일거야. 제발, 제발, 멋지게 한 번 올려다오.
순간, 아아.. 솟는다. 찌가, 찌가 솟는다! 유리처럼 잔잔한 수면을 뚫고 찌불이 소리없는 승천을 시작한다. 하나는 하늘로 까마득히, 하나는 물 속으로 아득하게. 그렇게 서로의 간격을 천천히 벌린다. 찌가, 찌 하나가, 거짓말처럼 솟고 있는 것이다!
몇 초나 될까, 찌가 솟는 시간. 그러나 그 몇 초 동안 난, 세상의 어떤 환각제도 줄 수 없는 궁극의 흥분을 맛본다. 저 물 속 깊은 곳에서 이루어진 한 생명체의 작은 움직임이, 8호 모노필라멘트 낚시줄을 타고 오면서 한 번 증폭되고, 7.2m 카본낚싯대를 타고 오면서 한 번 더, 내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또 한 번 더, 내 팔뚝을 타면서 한 번 더... 그것이 그렇게 내 심장에 닿으면 - 내 몸에 있는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 시퍼런 날을 세우고, 내 몸에 있는 모든 신경 한올한올을 손 대면 베일 듯 팽팽하게 당겨놓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집중이, 그 작은 불빛 한 점에 맹렬히 쏠린다. 그 순간, 세상은 그 불빛 하나다. 그 빛 한 점과 나, 그저 둘뿐이다. 이제, 챔질을 해야 한다. 잠시 후, 매서운 파공성이 밤하늘을 둘로 가를 것이다. 어금니에 힘이 들어간다. 자, 조금 더. 조금 더, 그래, 조금만 더...그렇지! 숨을 멈추고, 있는 힘을 다해 대를 뽑는다. 쐐애애액-!!
챔질은, 너무 늦어도 안 되고, 너무 빨라도 안 된다. 그렇다면 그 님을 만날 수 없다. 빨랐는가. 늦었는가. 만났는가. 만나지 못 했는가. 그건 중요치 않다. 딱 여기까지다. 밤 새도록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처럼 찌가 솟았다면, 유체역학 따위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그 신비롭고 오묘한 상승 앞에서 숨을 멈추었었다면, 그걸로 된 거다. 난, 낚시를 한 거다.
- 다른 곳에 쓴 나의 글 <또 다른 세상에서> 中
그간 단 한 번도 부러진 적 없는 내 낚싯대가 부러졌다. 그것도 손잡이대가.
다행히, 낚싯대 손괴의 범인은 현행범으로 그 즉시 체포하여 수감할 수 있었는데...
이 중의 한 녀석이 범인이렷다. 그 놈이 그 놈 같아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서도.
턱걸이 포함, 세 수가 월척. 신기하게도 28cm 이하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최대어는 32cm.
황홀했던 그날밤 이후 난 4일을 더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입질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3일 내내 단 한 마리의 붕어도 만날 수 없었다. 기온은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조금 올랐는데, 4일 내내 비가 오고 날이 흐렸던 것이 악재였던 듯 싶다. 계속 흐린 날씨로 일조량도 부족했고, 바람마저 잔잔해서 물색이 너무 맑아져 있었다. 수심은 제일 깊은 곳이 80cm였고, 낚싯대도 가장 긴 대가 32대였으므로 맑아진 물색은 아무래도 큰 걸림돌일 거라는 생각을 혼자 해 봤다. 어쨌거나 봉암지의 호조황은 그 날을 정점으로 급속하게 꺾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조사님들의 조황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조사님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결국 그 넓은 봉암지에 나 혼자 남아 진도의 마지막날 밤을 맞았다. 그리고, 준척붕어 한 마리가 작별인사라도 하듯 근사한 찌올림을 보여주었다. 녀석이 진도에서의 마지막 붕어였다.
이 글의 처음에서 내가 '실력' 얘기를 했었다. 이제 그 얘기를 마저 해야겠다.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낚시꾼(하늘의 별처럼 많고 많을 것이다)이 만약 내 자리에서 열흘 동안 낚시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말했다시피 하루에 한 마리꼴(그나마 대부분이 낚시가 된 이틀 동안에 낚은 것이지만)로 낚았고 최대어도 고작 32cm에 불과한데,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높이의 실력을 지닌 어마어마한 고수가 나 대신 낚시를 했다면? 70여수의 붕어를 만나고, 그 대부분이 월척, 그 중에 16마리가 4짜, 결정적으로 3마리는 5짜, 이런 엄청난 조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앞에서 밝혔듯 나는 낚시에서의 '실력'을 믿고, 따라서 엄연한 실력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통감하는 사람이다. 맞다. 나보다 실력이 더 좋은 이가 했더라면 나보다 몇 수 더 낚고, 나보다 더 근사한 녀석을 낚았을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 그 확률의 차이가 바로 실력의 차이일 것이고.
그런데, 내가 이번에 진도에서 열하루를 보내면서 크게 느낀 게 있다. 이전에 낚시를 할 때에는 정말 몰랐던 것이다. 그것은, 낚시라는 행위가 바로 '대자연'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이가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 해 놓았다 한들, 대자연의 관대한 '허락'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대자연의 관할 아래에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변수라 해도, 그 작은 연결고리가 하나 끊어지는 탓에 낚시꾼이 오매불망 바라고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 했기에, 그런 대자연이 야속할 수도 있고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이상 죽는 그 날까지 추호도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하고도 엄정한 대자연의 섭리다.
낚시꾼은, 아니 인간은, 그 섭리 앞에서 겸허히 고개 숙이고 자세를 낮출 줄 알아야 한다. 실력을 열심히 갈고 닦고, 물가에 나서서는 혼신의 힘을 다 하여 그 실력을 십분발휘 해 놓은 후에, 겸허하게, 그리고 공손하게 대자연의 허락을 기다리는 일 - 그것이 바로 낚시다. 참으로 자명한 이 진리를, 낚시를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배웠다. 몸으로 뼈 저리게. 저 멀리 남도에서.
하지만, 나보다 실력이 높은 조사님들은 내게 망설임 없이 말해도 된다. 내가 너처럼 했으면 4짜를 잡고도 남았을 거라고. 네가 잡은 것보다 서너배는 더 잡았을 거라고. 정말 그래도 된다. 난 충심으로 인정한다. 그 실력차를 인정하고, 그 실력을 존경하며, 그 실력을 부러워하고, 그 실력을 동경한다. 하지만 난, 없는 실력이지만 진도에서 열흘 동안 내 낚시를 했다. 내 실력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리고, 딱 나의 실력으로 허락받을 수 있는 그만큼의 성취를 허락받았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열하루 중에 단 하루였지만, 그걸로 됐다. 정말이지 그걸로 됐다. 나에게는 더 이상 허락받을 자격이 없었던 거다. 그걸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기에 아쉽지도 않고, 야속하지도 않다. 비록 단 하루였지만, 대자연의 관대한 허락 하에 펼쳐지는 황홀경 앞에서 넋을 잃을 수 있었으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같은 조졸(釣卒)에게는 분에 넘치는 행운이 아닌가.
그러나, 어차피 대자연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되는 거라면서, 그냥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대충 해 보는 것, 그것은 낚시가 아니다. 월척이니 4짜니 그게 다 운도 따르고 어복이 좋으니까 잡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이지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언제 떨어질지 그 누구도 모르는 대자연의 윤허가 떨어지는 그 순간, 높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 최선을 다 해 놓았을 때, 바로 그 곳, 그 자리라야 꾼들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 얼치기가, 대충 맨 채비에 새우 대충 꿰어서 괴발개발 던져 놓은 곳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근사한 님은 오로지 '낚시'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인데, 실력도 없는 이들이 노력조차 하지 않고 하는 이런 짓은 애초에 '낚시'가 아닌 이유다. 낚시를 하고 있지 않은데 낚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남도에서의 열하룻밤, 난 그걸 배웠다.
이러한 전차로, 나의 이번 진도행에 대해 그 누가 뭐라 말하든 난 정말 상관없다. 나는, 낚시를 했으니까. 그리하여, 참 행복했으니까.
앞에서 나는, 누군가가 '왜 낚시를 하느냐'고 물으면 '찌맛'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노라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낚시를 왜 그리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면 이전에는 대답할 수 없었겠지만 이젠 대답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래야 낚시니까요."
열흘이건, 한달이건, 일년이건 그 무슨 상관이랴. 고운 님 만났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나
그 어떤 보석보다 신비한 님의 광채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나
건너 올 때 설레었고, 건너 갈 때 행복하니, 아, 정말 그걸로 되지 않았나!
언제고 더 반갑게 다시 만나자꾸나. 고맙다, 남도야. 고맙다, 남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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