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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뒷이야기

스트로비스트 | 11-22 12:47 | 조회수 : 5,460

 

 

 

 




*2016년 2월 28일 늦은 오후의 봄눈

안녕하세요. 권학봉입니다. 
제가 한 권의 책을 집필하면서 겪었던 뒷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집필을 생각한 계기는 역시 먹고 사는 문제로 출발합니다. 
사실 사진으로 밥을 먹고 산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특히 상업적 활동을 하지 않고 순수사진으로는 말이죠. 
저의 주된 수입원이었던 스톡사진 판매가 최근 4, 5년 사이에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이유가 가장 컸는데, 
꾸준히 판매량이 늘었지만 수익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였고...

 

 

 

 

 

 

 

 

 

*기획으로만 머물렀던 첫 번째 책 프로젝트의 표지 

그래서 출판을 결심하고 최선을 다해 나름 디자인까지 곁들인 멋진(?) 책을 완성했습니다.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나름 좋은 책이라 자부했기 때문에 일단 출판사에 제안서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교보문고 등에서 사진 관련 책을 출판한 약 50여 곳의 출판사에 제안했지만 
전화가 온 건 3곳, 그중 관심을 보인 곳은 1곳. 
그러나 출판까지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출판경력이 없는 초짜하고 일하는 게 부담스러웠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어느 정도 포기하고 다른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봄날,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원고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는 중 

출판에 관해 의논하고 싶다는 메일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기뻤죠. 
날짜를 잡고 미팅을 한 후에 어느 정도 가시적인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계속해서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도중에 자빠지면 안 된다. 
처음에는 다들 의욕적이지만 나중에 도망가는 저자들이 많다.”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물론 후에 알게 되었지만 정말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처럼 책을 판매량이 많아 충분한 보상이 되었던 시절도 아니고, 
들어간 노력에 비해서 기대되는 수익이 변변치 않은 것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별 돈도 안 되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맴도는 게 정상이죠. 

 

 

 

 

 

*집필 중에 캡처한 파일과 폴더 목록들

첫 번째 작업은 목차부터 이어지는 기획단계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런 작업은 전부 출판사에서 해주고 저는 그냥 내용만 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목차를 작성해봐라.”라고 
들었을 때는 그냥 일종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다 결정되어 있는데 그냥 작가를 떠보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말이죠. 
그런데 일이 진행되면서 점점 진지해지더니 결론적으로 목차부터 구성, 
기획까지 거의 대부분 작가가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물론, 전문 편집자가 전체적인 기획을 검토하고 수없이 많이 고치고, 
추가하고 빼면서 다듬어 나갔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든 걸 처음부터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혈압을 상승시키던 아래아한글 에러 메시지

살을 붙여 나가면서 첫 원고를 쓰기 시작했고, 
이쪽 세계가 그런지 아래아한글로 작성해야 하는데 처음 사용하는 툴이라 너무 헷갈리고 어렵더라구요. 
글을 쓰는 것과 사진을 붙여 넣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명한 작가들이 하루 종일 작성한 글을 날려 먹었다는 이야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처음 작성한 원고의 엉성함과 딱딱함은 지금 보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다만 편집자가 참을성 있게 하나하나 지적해주고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오도록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프로가 그냥 프로가 아니란 걸 알 것 같았습니다. .

 

 

 

 

 

 

*초고                                            최종 정리된 원고

어느 정도 살이 붙여지면서 기획이 다시 한 번 크게 바뀌고 계속해서 목차를 수정하는 작업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꼭지가 들어가기도 하고, 
있던 내용이 사라지기도 하면서 다듬는 무한반복의 연속이었습니다. 
저처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사람은 맨날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는 게 일인데,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원고와 씨름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괴로웠죠. 

 

 

 

 

 


*온라인으로 작업하기

일은 주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지방에 살고 있는 것도 이유였지만 편리하고 빠른 인터넷 속도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최초의 원고가 작성되고 나면 편집자가 검토하고 수정사항 및 
여러 가지 지시내용이 달린 파일이 다시 넘어오고, 
그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보내는 과정이 반복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창고 작업실 1                                 작업실 2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전체적인 원고가 한 바퀴 쭉 돌고나면 
다시 한 번 목차와 기획안을 수정하고 다듬어 가는 방식으로 서서히 마무리되더군요. 
책을 쓴지 한 3달이 지날 때쯤에는 아무 이유 없이 정말 하기 싫은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래아한글 아이콘 자체를 클릭하는 것이 너무 싫은 느낌? 
마치 시험기간에 시험공부 빼고 다 재미있는 그런 상황 같은 거요. 
한 일주일 딴 짓을 하니까 조금 의욕이 돌아오더라구요. 
처음에 출판사에서 경고했던 상황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왜 계속 그런 말을 했는지 완전히 이해해버렸습니다.

 

 

 

 

 

 

 

*설명 난이도 사이에서의 소심하고 진지한 고민들과 재작업, 재작업...

전문적인 개념을 설명할 때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히 컬러처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색공간, 색역, 계조, 인텐트 등 
어려운 기초를 이해시킨다는 게 정말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쉬운 이해를 위해서는 비유와 어느 정도 독단적인 정리가 필요한데 
이게 그렇게 딱딱 잘라서 설명되지는 않거든요. 
예를 들어 색공간 안에 색역이 있지만 어떤 색공간은 색역을 포함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색역을 그냥 색공간으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틀리면 욕먹는다 생각하니 
더욱 어렵게 설명하게만 되었습니다. 
결국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더라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완전히 다시 작업했습니다. 
정확한 설명을 위해서는 어차피 전문서적 분량이 필요했고, 
사진작가로서 그 모든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필수적인 개념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진 밭에서 사진 찾기!

예제사진을 선정하는 데 시간이 정말 많이 들더라구요. 
최대한 좋은 사진, 
즉 완벽한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데 사진보정하는 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함이 있는 사진을 골라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쌓여 있는 하드디스크를 꺼내고 
처음부터 몇 번 다시 검토하고 골라서 실험해 보고 보여드리기에 부끄럽지 않은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그중에서는 제가 잘 촬영하지 않는 분야도 있고, 
특정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좋은 예제가 없는 경우에는 완전히 새로 촬영해야 한 것도 있었습니다. 

 

 

 

 

 

 

 


  

*날씨가 협조해주지 않는다... 

가장 어려웠던 게 은하수 촬영이었는데, 
장마철이라는 계절이 한몫했습니다. 
매일같이 비가 내리는 날들 중 어느 정도 맑은 날을 골라서 산에 올라가는 데 집중했죠. 
어떤 날은 맑았는데 차량으로 산 위에 올라가니 안개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산꼭대기에서 비행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별을 촬영하려고 애쓰다가 
간간히 내리는 비 때문에 추위에 떨면서 하늘만 바라본 날도 있었구요. 
일기예보 사이트의 위성사진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즈음의 어느 날, 
구름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은 날이 있더라구요. 
바로 준비해서 함백산에 올랐습니다.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 거기서부터 걸어가야 했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니 그동안 아무도 없었던 함백산 정상에 사람이 그렇게 많더군요. 
모두들 저처럼 맑은 날을 골라 은하수를 촬영하기 위해서 온 분들이었습니다. 

 

 

 

 

 

 

 

*최종 표지 사진으로 점 찍힌 사진

어느 정도 분량이 되어서 내려오던 도중에 
멀리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던 젊은 청년을 만났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텐트치는 것도 좀 도와주고 모델을 부탁했습니다. 
흔쾌히 수락해주고, 
촬영에 긴 시간 협조해준  그 사진이 바로 표지가 되었습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 등은 출판사에서 전적으로 결정하고 
저자는 그냥 통보받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영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고, 
나름의 경험과 전문성을 요하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이유로 100% 마음에 들 수는 없지만 노력과 정성이 묻어나는 훌륭한 결과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표지에 들이는 공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2중 표지 컨셉으로 속표지 위에 띠지 형태의 겉표지가 있는 스타일로 작업했는데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표지 시안들과 수없는 교정 작업

아래아한글에서 출발해 작은 jpg 파일들이 모여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온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산고를 겪고 얻은 자식 같다고 표현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는데 
직접 해보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작고 보잘 것 없는 불씨를 살려서 잘 키워내 멋지고 아름답게 마무리되어가는 전체 과정에서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제 이름을 단 책이 서점에 쫙 깔리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순위를 다투어가며 판매하고 있는걸 보니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몇 번이고 한 글자 한 글자 표 하나 화살표 하나까지 신경 썼지만 
어딘가에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뭔가 잘 표현할 수는 없는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지만, 
뒤돌아보면 어찌 끝났을까 싶게 길었던 이 모든 시간들이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많은 응원 보내주셨던 팝코넷 회원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눔] 사진 보정에 관한 책인데, 나눔 받고 싶으신분은

꼭 필요한 이유를 댓글로 적어주시면 한두분 선정해서 저자가 집적 보내 드리겠습니다. 

* 후기, 리뷰 이런 조건 같은거 없구요. 그냥 순수하게 드리는것 입니다. 

읽어 보시고 좋으시면 주변에 많이 알려주세요.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스트로비스트님의 팝코 앨범 ★
https://photo.popco.net/5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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