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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렌즈로 담아 낸 한국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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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능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저 빛의 스펙트럼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는 색채코팅이 되지 않은 형석렌즈가 필요했다. 내가 사용한 렌즈는 19세기 말, 초상사진용으로 만들어진 페츠발 렌즈(Petzval lens)였다. 한 세기 전, 어느 이름 모를 영국 장인이 심혈을 쏟아 깎아 만든 달메이어 렌즈(Dallmeyer lens)로 바라 본 우리 산하는, 내 유년은, 할아버지가 그리던 산수화와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어쩌면 할아버지 그림을 사진으로 흉내 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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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국사봉의 아침 여명과 운해. 해돋이를 보노라면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란 걸 알면서도, 아래 깊숙한 곳에서 감출 수 없는 불꽃이 솟아오르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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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가 낀 정령치의 아침. 정령치에선 천왕봉도 보이고 반야봉도 보인다. 사진을 찍으며 15년 전 지리산 종주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구름 속에서 길을 잃고 만났던 원추리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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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향적봉대피소에서 본 해돋이. 잔뜩 낀 구름 덕분에 중봉에서 해돋이를 기다리다 향적봉대피소로 돌아가던 길, 순간 구름이 걷히더니 가야산 주위로 영롱한 빛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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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향적봉에서 본 아침 산경. 20kg의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일이 쉽지 않다. 보통 사람보다 시간이 두 배 반 더 걸린다. 어릴 적 외조부께서 그림을 그리면 옆에 앉아 먹을 갈았다. 먹을 갈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상태로 글자나 그림을 그리면 사람의 영혼이 그대로 스며들지 않을까. 먹을 가는 마음으로 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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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노성미 산사진가
cho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