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카의 추억, 초소형 R/C(Radio Control) : 쵸로모드

2004-10-19 09:34 | 조회수 : 13,081 | 추천 : 1




어렸을 적엔 장난감 자동차 하나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다. 입을 붕붕 소리를 내며 놀기도 하고, 친구 녀석이 오면 녀석의 자동차와 둘이 자동차를 손에 움켜쥐고 자동차 시합을 하기도 했었다. 자동차 시합이라고 해봤자, 말로 온갖 설정을 하며 자동차를 손에 쥐고 달리는 것 뿐이었지만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그 시간에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러던 중 실제 자동차 시합을 할 수 있는 장난감이 등장해서 동네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는데, 우리는 그 놈을 미니카라고 불렀다. 5~6cm의 작은 자동차인데 내부에 태엽장치가 장착되어 있어서, 바닥에 바퀴를 대고 뒤로 당겼다가 놓으면, 태엽이 풀리면서 쌩하고 달려가곤 했다. 그냥 작은 자동차라고 해서 미니카라고 불렀는데, 실제 그 장난감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이름, 쵸로큐(CHORO-Q).
미니카의 원조는 바로 이 쵸로큐다. 일본 게임/장난감 회사로 유명한 다카라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장본인인 쵸로큐는 일본 장난감 산업계에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이다. 태엽 장난감부터 미니어쳐, 핸드폰 줄, MP3 플레이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아직까지 사랑 받고 있는 쵸로큐의 새로운 모델이 올해 초에 발매되었다. 이름은 쵸로 모드... 비트챠지와 같은 방식의 초소형 R/C(Radio Control) 제품이다. 늦은 감이 없긴 하지만, 이제 이 쵸로모드를 낱낱히 분석해보자.



일본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로 제품 수급에 차질이 있었다는 쵸로모드.
올해 6월 떠난 일본 여행길에 어렵게 하나를 구입할 수 있었다. 제품 가격은 생각보다 비싼, 4,179엔 부가세까지 더하면 4,200엔이 훌쩍 넘어간다. 오프라인에서 구입을 한거라 온라인보다 다소 비쌀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생각한 가격보다 1,000엔 가량이나 비쌌다. 게다가 재고도 없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놈을 구입했다. 덕분에 제품 구입의 즐거움 중에 하나인 모델의 선택권은 없었다. 구입한 모델은 CM103C, 오렌지 색상이 잘 어울리는 귀여운 녀석이다. 포장이 부실해 제품 구입 시부터 실망을 주던 비트챠지와는 다르게 쵸로모드는 제품박스도 튼실하고, 내부 포장도 깔끔하게 되어 있어 제품을 개봉하면서부터 만족감을 안겨줬다. 제품을 개봉하자 차체와 충전 크래들, R/C 모듈, 마이크 모듈과 라이오 모듈의 여분 커버 두 개, 설명서가 보인다.




쵸로모드는 독특하게도 핸드폰과 연결해서 차체를 조종한다. 이름하여 셀룰러 폰 라디오 콘트롤(Cellular Phone Radio Control)이란다. 핸드폰을 이용한다고 해서 뭐 적외선등의 신호로 조종을 하는 제품인줄 알았는데, 설명서를 살펴보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이어 마이크잭에 R/C 모듈을 연결하라고 하는 걸 보니 핸드폰의 버튼 비프음을 인식해서 작동하는 방식인 듯하다. 우선 이어 마이크 잭이 있는 핸드폰을 하나 준비했다. 준비라고는 하지만 그냥 주머니에서 꺼냈다. 요즘 이어 마이크 잭이 없는 제품이 어딨겠나?








핸드폰과 연결해 보았다.
배터리는 충전 모듈에 AAA배터리 3개가 들어간다. 이놈도 홀수개의 배터리라니... 대체 남는 하나는 어찌하라는 것인지... 그나마 요즘엔 3개들이 건전지 세트가 나와서 다행이다. R/C 모듈에 배터리를 넣기 위해 살펴보니 단추형 전지인 CR2032 리튬전지가 들어간다. 혹시나 해서 커버를 열어보니 다행히 버튼형 전지는 동봉되어 있었다. 핸드폰의 이어 마이크 잭에 R/C 모듈을 연결하고, 버튼을 누르니 자동차가 꼼짝하지 않는다. 대체 뭐가 문제지? 제품의 매뉴얼에 보면 일본내에서 사용되지 않는 핸드폰과 일부 구식 핸드폰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써 있었기에 겁이 덜컥 났다. 마음을 비우고 찬찬히 살펴보면 되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분석에 임해봤다.




이어 마이크잭이 없거나 사이즈가 다른 제품은 마이크 모듈을 이용, R/C 모듈을 연장하면 된다고 써 있기에... 마이크 모듈을 꺼냈다. 마이크 모듈은 핸드폰의 피프음을 이어 마이크가 아닌 수화 스피커에서 R/C 모듈로 직접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어 마이크잭이 없는 기종도 마이크 모듈을 이용하면 쵸로모드를 이용할 수 있다.






R/C 모듈은 클립이 달려 있어서 벨트나 다른 부분에 끼울 수 있게 되어 있다.
R/C 모듈 좌측의 스위치를 ON 으로 놓고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기대가 컸지만 역시 묵묵부답.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작동이 안되는 이유가 뭘까? 우선 핸드폰의 비프음을 인식한다고 가정하니 조금씩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에 발매되는 핸드폰은 버튼음을 다른 소리로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말소리라든지, 물방울 소리, 챠임벨 소리등으로 말이다.
핸드폰 설정 메뉴를 이용해 기본값으로 변경하고 작동을 해보았다. 결과는 성공.
직접 연결한 형태가 아니라 마이크 모듈을 거치는 형태라서 그런지 인식이 안되거나 느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작동이 안되는 원인을 찾아냈으니, 마이크 모듈을 제거하고 직접 R/C 모듈을 연결해보기로 하였다.
고생 끝에 알아낸 한가지 팁은 버튼음 크기를 크게할 수록 조종이 잘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매뉴얼에 써 있는 내용..)

작동이 잘된다. 국내 핸드폰으로도 이용하기에 문제가 없는 듯하다. 매뉴얼을 토대로 각 버튼을 눌러 보았다. 2번은 직진, 8번은 후진, 4번은 좌회전, 6번은 우회전, 1번은 직진 좌회전, 3번은 직진 우회전, 7번은 후진 우회전, 9번은 후진 좌회전, 5번은 정지, 0번은 대쉬에 각각 대응된다. 4번과 6번을 제외한 버튼은 연속형이다. 한번 누르면 정지를 누르거나 다른 동작을 할 때까지 그 동작을 지속한다. 4번과 6번은 버튼을 누르고 있는 동안만 지속된다. 때문에 적절히 조합하면, 꽤나 어려운 동작들도 구현할 수 있다. * 표는 프로그램을 위해 쓰이고, #은 프로그램 후 동작을 개시하는데 쓰인다.



*누르고 이후에 취할 행동을 입력, #을 누르면, 프로그램대로 쵸로모드가 작동된다. 예를 들어 *28282828#을 누르면 전진과 후진을 4번씩 왕복한다. 명령은 최대 20개까지 입력이 된다. 또 한가지 독특한 점은 일본어 문자에 대응이 되는 점이다. **을 누른 후 입력을 하고 #을 누르면, 각 단어에 해당되는 행동을 취한다. 1번부터 9번까지 각각 あ,か,さ,た,な,は,ま,や,ら행에 대응된다. 그리고 같은 숫자를 반복 입력하면 반복한 단의 문자가 입력된다. 예를 들어 **7999#을 누르면 일본어로 0을 뜻하는 まる가 입력되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을 하고, **644#을 누르면 일본어로 8을 뜻하는 はち가 입력되어 8자 주행을 한다. 모든 단어가 다 되는 것은 아니고 미리 입력된 10개 정도의 기본 단어만 이용할 수 있다.




충전하다 자구 빠지는 일이 생기는 비트챠지에 비하면 상당히 편하다. 충전중에는 적색 LED가 완충시에는 녹색 LED가 점등되는 것도 편리하다. 충전 후 바닥에 놓고 한참을 직진을 시켜보니 약간 좌측으로 기울었다. 하부를 살펴보니 비트챠지와 마찬가지로 앞바퀴의 스티어링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었다. 약간 조절하고 기능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럼 속도는 어떨까? 비트챠지와 비교를 해보니 쵸로모드가 대쉬 모드일 때, 고속모터인 2.6 모터를 단 비트챠지와 거의 비슷한 속도를 보였다. 방 안에서 가지고 놀기에는 좋으나, 책상에서는 눈감짝할 새에 벼랑으로 질주하니 주의해야할 듯 하다.

휴대성은 어떨까?

작동시간은 쵸로모드가 5분 정도로 비트챠지보다 30초 정도 더 길었지만, 비트챠지는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온 제품이라 정확한 비교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완충까지의 충전시간은 쵸로모드가 더 짧았다.


적외선으로 조종하는 것을 기대했던 필자에게는 생각만큼 대단한 제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에 나온 초소형 R/C 제품에 비해서 많이 보완된 모습을 보였다.
충전하기도 쉬워졌다는 점과 프로그램 모드가 내장되어 있는 점도 기존의 초소형 R/C와 차별화된 점이다. 전체적인 완성도도 뛰어나고 제품 컨셉도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나 키덜트들에게는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니카 형식의 쵸로큐에서 가능했던 윌리(앞바퀴를 들고 달리는 것)가 지원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쵸로큐의 번호판에 500엔짜리 동전을 끼워 무게중심을 뒤로 옮겨 앞바퀴를 드는, 윌리를 하며 노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당연히 쵸로모드에서도 윌리를 하는 것을 기대한 유저들이 많아다고 한다. 하지만 쵸로 모드의 경우 하부의 차체가 두꺼워서 윌리가 되기 전에 바닥에 땅에 닿는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조금만 오랜 시간 쵸로큐를 이용해준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렴했으면 가능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쵸로모드를 마지막으로 비트챠지나 디지큐에 의해 열풍처럼 일어났던 초소형 R/C의 바람이 잠잠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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