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Xor_ 4500*3000 밖에 안되는 코닥 slr/c로 장축 70cm 정도 인화를 몇번 했었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만족했었습니다.
인화는 해상도 깡패인 카메라들 보다는 계조가 좋은 녀석들이 느낌이 더 좋았던것 같습니다.
다 떠나서 세르피코님 사진이야 어떤 사이즈로 걸어도 작품이겠죠^^
이상 대형인화도 전시와도 거리가 먼 초보의 뻘소리였습니다.
002넴갓무저는 대형인화 할일 없겠지만 지하철 광고판을 볼때 놀랄때가 있습니다. 2m 이상의 길이의 인물사진인데 피부 디테일이 살아있더라구요
욕심은 지를때 해소된다는 여러분들의 얘기가 있지만 세르피코님은 이미 a7r2 를 갖고 있어서... ㅎㅎ 중형미러리스 밖에 답이 없지 않나요? ㅎㅎ 고화소 바디 기추 전까지는 dpi와 타협하지 않고 발주처의 사이즈 요구에 응하기 보다는 특정 사이즈 이하의 인화만 가능하다고 나름 자체 QC 를 도입하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2017-06-07 08:17 신고
005구라퍼 "대형인화로 사진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 고수일꺼라고 추측은 하고 있었는데, 예상대로 강호의 고수이셨군요!
"고스펙 고화질 바디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부분을 어떻게 해소하셨나요?" → 해소할려면 (아직까지는) 돈이 많이 드는데, 해소가 되겠습니까? 그냥 적당한 선에서 "자신과 타협"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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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시회를 위해 또는 지인의 요청에 의해 대형인화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고 필름을 사용하던 시절에 몇 번정도 해보았습니다.
아시겠지만
필름으로 인화하는 사진의 화질은 필름의 사이즈가 결정적인 역활을 합니다.
화질에서는 필름 사이즈가 깡패이고 조폭입니다.
그래서 판형이 더 큰 카메라를 사용하고자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DSLR이나 미러리스에서 고화소 카메라를 선호하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의 사진생활은 35mm SLR 카메라로 시작했습니다.
몇번의 그룹전을 통해
필름 크기의 차이에서 오는 화질의 차이를 뚜렷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5mm 소형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중형으로 옮겼습니다.
중형으로 만족할 줄 알았는데
중형 카메라의 6x6 사이즈가 어느덧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6x7을 넘보다가 6x12 파노라마로 옮겼습니다.
6x12로 인화를 해보니 대형 판형에서 오는 시원함에
고화질에 대한 욕구가 해소가 되더라구요.
큰 판형의 사진을 위해 매번 파노라마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대형인화를 할 일이 몇 번 안되더라구요.
몇번 안하는 대형인화를 위해서
무겁고 거치장스러운 뿐 아니라
비싼 중형카메라와 파노라마카메라를 들고 매번 출사를 다녀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더군요.
그런 의구심이 들 무렵이 DSLR이 퍼지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중형카메라와 파노라마카메라를 사용하는 저를 보고 있자니,
일천한 실력에 너무나도 고급스런 카메라를 쓰고 있었습니다.
저를 모르는 분이 저를 보았다면
외견상으로 전문가로 생각하고도 남을 것 같았습니다.
실력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고급 카메라를 사용하는 저를 제가 보고있자니 기가찼습니다.
한심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의 품질은 출력물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담긴 철학이 무엇이냐로 결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형인화를 할 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알게된 사실이 있습니다.
고급 카메라는 그런 카메라에 걸맞는 직업을 갖고 계신 분들이 사용하는 기기라는 것을요.
취미로 사진을 하는 제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고사양의 고가 기기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제가
1m 이상의 사진을 인화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1m 이상 출력하는 일은 전문 사진가들의 몫인 것이죠.
1m 이상 대형 출력을 하시는 분들은 고급카메라, 고화소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진업에 종사하시는 - 저의 추정 - 세르피코님 같은 분이 고화질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스펙 고화질 바디에 대한 욕심"은 자신과의 타협이나 금전으로 해결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시는 분이라면 자신과의 타협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취미로 사진을 하는 저와 타협을 했습니다.
고스펙 고화질 바디를 찾지말고 사진에 철학을 담아라.
고스펙 고화질 바디를 살 돈이 있으면 사진에 대한 개똥철학을 나눌 수 있는 지인과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여서 진진한 이야기를 나눠라라고 타협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후에는 DSLR 카메라는 중급을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미러리스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제게는 NX1이면 충분합니다.
웹 사진을 올리고 그룹전을 위해 출력하는 정도면 어쩌면 NX1도 과분한 스펙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NX1이 고스펙 고화질 바디가 아니고 무엇이냐 라고요.
맞습니다. 제게는 충분하고 넘치는 스펙입니다.
그러나 NX1보다 더 좋은 스펙의 카메라도 많으니 적당히 넘어가 주시면 어떨까요?
구라퍼[세르피코] 잡설을 조금만 더 늘어놓겠습니다.
세르피코님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저가 선택한 타협점에 대해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저의 문제는 조금 원초적인 부분으로..
사진의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는게 싫었습니다"
→
대형 인화를 추구할 때 제가 품었던 고민과 동일합니다.
필름의 물리적인 크기에서 기인하는
출력 이미지 크기의 한계성에 실망을 했었습니다.
회화나 동양화를 감상하면서 화가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캔버스의 크기에는 한계가 없으니
작가의 생각을 물리적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에 사진은 조금 다릅니다.
사진 작품의 크기는 필름이라는 물리적인 크기에 종속되어야 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그 물리적 종속성에서 벗어나고자
더 큰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사진을 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귀착점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종속의 주체가 필름에서 CCD라는 것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지를 저장하는 물리적인 매질이
전자적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 외에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저장하고 출력하는
절차적인 변화에는 별다른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이 물리적 매질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사진이라는 개념이 원천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더 크고 더 선명한 이미지를 출력할 수 있는
대형 CCD를 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필름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듯이 CCD의 크기도 일정 크기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을 감안할 때,
사진이라는 출력물이 무한 캔버스에 작가의 철학을 그려내는
회화의 크기를 흉내 내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CCD의 크기에 종속적인 사진 예술의 한계를
작가가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형으로 출력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CCD의 화소가 보일지라도 무한 크기의 출력물에
도전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자의 경우를 선택했고,
"포기"라는 단어 대신에 "타협"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포기라는 단어는 왠지 패배의 의미가 있어서
왠지 제가 진 느낌이라서 단어를 바꾸었습니다.
저의 지인 중에 서양화가가 계십니다.
그 분의 푸념은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필름의 크기에 의해 이미지의 크기가 결정되는 사진 예술이
그 서영화가는 부럽다는 것이죠.
화폭의 크기가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작게도 느껴지고
어떨때는 너무 크게도 느껴진다는 것이죠.
이럴 경우 카메라의 정해진 규격(필름의 규격과
필름의 크기에 따른 최대 출력물의 범위)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들 것 같다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화가분의 말씀을 듣고
필름 크기에 종속된 사진의 한계가 다른 시각에서는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타협했습니다.
적당한 크기로 사진을 출력하자.
이제는 고민의 대상이
사진의 적당한 크기가 어떤 크기인가로 변해있었습니다.
적당한 크기를 고민하다보니
사진에서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가 잘 표현되는 크기가
어떤 크기인지를 더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형 출력물이 주는 호방한 느낌은
저를 더 이상 유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20R을 넘기는 사진을 출력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의 크기에 대해서 저와 타협을 한 것입니다.
아마도 타협의 이면에는
제 사진의 품질이 좋지 못한 것이 한 몫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작은 사진일 때 보이지 않던 잡스런 것들이
대형 사진으로 출력해 놓으면 지저분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얼굴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서 어두운 조명아래에서
맞선을 주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제 사진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서 일부러 작게 출력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적당히 타협하고 살고 있습니다.
타협이 많아질수록 맘은 편해지지만 잃는 것도 많아집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타협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작가에게 있어 최대의 적은 타협입니다.
타협이 끼어드는 순간 작가의 도전정신이 희석되기 때문이죠.
도전정신이 묽어지는 순간 좋은 작품,
신선한 작품은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러나
뱁새가 황새(전문 사진작가님들)를 쫒아가다 보니
가랑이가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워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이 이상한 곳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세르피코님의 현재 고민의 결과가 어떻게 해결될 지 궁급합니다.
혹시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거나 해결이 되어가는 중이라면,
삼톡의 동인들과 결과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댓글을 쓰다 보니 별 내용도 없는데 길어졌습니다.
아마도
저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의 물리적인 한계에 대해서
저가 나름대로 고민했던 경험을 말씀드리고자 한 것으로
이 댓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조언을 한다거나
제 생각을 강요하고자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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